[독립운동가] 박차정,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을 이끈 여성 독립전사…한국사 인물
박차정은 근우회와 의열단에서 여성운동과 항일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조직과 교육을 맡고 곤륜산 전투에도 직접 참여했다.
피플 뉴스
박차정은 근우회와 의열단에서 여성운동과 항일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조직과 교육을 맡고 곤륜산 전투에도 직접 참여했다.
허위는 을미의병과 13도 창의군을 이끌며 대한제국 말기 항일 의병 투쟁에 참여한 인물이다.
임진강의병연합부대를 조직해 유격전을 벌이고 순국한 독립운동가로 남았다.
안정복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동사강목》을 저술해 한국사 연구의 체계를 정리한 학자다.
역사 기록과 후학 교육에 힘쓰며 조선 후기 지식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하공진은 고려 전기 거란의 제2차 침입 당시 적진에 들어가 철수 교섭을 이끈 관리다.
현종의 피란 과정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하고 고려를 향한 뜻을 지킨 인물로 기록됐다.
배삼룡은 바보 연기와 개다리 춤으로 사랑받은 1세대 코미디언이다.
방송과 영화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코미디 문화 발전에 발자취를 남겼다.
송해는 가수와 희극 배우로 출발해 전국노래자랑의 대표 진행자로 자리 잡은 방송인이다.
국내외 공개방송과 평양노래자랑을 진행했으며, 만 95세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올랐다.
길옥윤은 치의학을 전공하고 한국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현인의 ‘내 사랑아’를 작사·작곡했으며, 사후 문화훈장 보관장과 ‘서울의 찬가’ 노래비로 음악적 발자취를 남겼다.
이상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로, 건축과 미술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오감도〉와 〈날개〉 등에서 문법과 서술방식을 실험하며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소외를 드러냈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다
청구도와 동여도를 보완해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고 지리서를 편찬해 땅의 형세와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함께 정리했다
민영환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으로 정치 개혁과 민권 신장을 제안하고 독립협회와 대미 외교 활동을 지원했다.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상소가 좌절되자 순국했으며, 유서로 동포들에게 학문과 단결을 통한 자유와 독립 회복을 당부했다.
최익현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유학자이자 관료로, 상소를 통해 권력의 잘못과 외세의 침투를 비판했다.
을사늑약에 저항해 1906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대마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서재필은 조선의 관료 출신 언론인이자 개화운동가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설립했다.
토론과 강연으로 민주주의와 참정권을 알렸으며,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류성룡은 이순신·권율을 천거하고 임진왜란기 국정과 군무를 총괄한 조선의 재상이다.
전쟁의 공과 과를 돌아보며 후세의 경계와 대비를 위해 《징비록》을 남겼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집현전을 중심으로 조선의 학문과 제도를 발전시킨 조선 제4대 왕이다.
과학 기술을 진흥하고 공법을 정비했으며, 대마도 정벌과 4군 6진 개척으로 국방과 영토를 다졌다.
왕건은 궁예 휘하의 장군에서 성장해 918년 고려를 건국한 초대 국왕이다.
해상 전략과 호족 포섭, 투항 세력과의 융화로 후삼국을 통일하고 북진의 기반을 세웠다.
이준은 1907년 이상설·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대한제국의 관리이자 외교관이다. 평리원 검사로 법무대신을 탄핵한 강직한 법률가였고, 그해 7월 14일 헤이그 숙소에서 순국했다.
허준은 조선 중기 왕실 의료를 책임진 의관이자 의학자다.
전쟁과 유배 속에서도 《동의보감》 집필을 이어 1610년 완성했고, 한글 의서도 편찬했다.
고려 말의 학자이자 문신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산청에서 재배에 성공했다.
씨아와 물레를 활용한 가공 기술까지 백성에게 보급해 무명옷과 솜이불의 확산을 이끌었다.
정몽주는 고려 말 성리학을 가르치고 명나라와의 외교를 이끈 문신이자 외교관이다.
온건개혁으로 고려를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피살되어 충절의 상징으로 남았다.
장영실은 관노의 신분을 넘어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자로 성장한 인물이다.
자동 물시계 자격루와 천상시계 옥루를 제작하고 천문기구·금속활자 개발에 참여했다.
정조는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재위한 조선 제22대 국왕이다.
장용영 창설,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과 법전의 재간행, 수원 화성 축성, 신해통공 등을 추진했고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끈 대표적인 군주로 평가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조선 수군을 이끌며 일본 수군을 연이어 격파한 장군이다.
칠천량 패전 뒤 13척으로 133척에 맞선 명량해전에서 승리해 무너진 수군과 전세를 되살렸다.
정도전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 혁명가다.
성리학 이념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 조선의 성립에 공헌했고, 《조선경국전》을 편찬해 새 왕조 법제도의 틀을 닦았다.
영조는 조선 최장기 재위 동안 탕평책으로 붕당 대립을 조정한 제21대 국왕이다.
균역법으로 군포 부담을 줄이고 형벌·국방·학문 제도를 개혁했지만 사도세자의 비극이라는 한계도 남겼다.
고려의 문신 서희는 거란의 침입 앞에서 역사와 지리, 국제 정세를 근거로 소손녕과 담판했다.
항복과 영토 포기 없이 거란군의 철수를 이끌고 강동 6주를 확보할 기회를 마련했다.
안중근은 교육과 국채보상운동, 의병전쟁에 참여하며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모색한 독립운동가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해 한국인의 항일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이황은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고 활발한 토론과 교육으로 영남학파를 이끈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다.
신분과 조건을 넘어 제자를 받아들이고 예와 인애를 실천해 조선과 일본의 성리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장기 간섭을 끝내고 고종의 친정을 이끄는 데 기여한 조선의 왕비다.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해외 사절 파견, 한미수교 지원 등 점진적 개화정책을 추진하며 외세에 맞섰다.
강감찬은 고려의 문관으로 성장해 요나라의 침입에 맞서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국가적 지도자다.
전쟁 영웅을 넘어 청렴한 재상으로 고려의 안정과 국정 운영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된다.
최무선은 1377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화약 개발에 성공하고 화통도감 설치를 이끈 고려 말 장군이자 무기 기술자다.
1380년 진포 해전에서 처음으로 화통·화포를 써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살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