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편강렬, 의성단 무장투쟁과 독립운동 세력 통합…한국사 인물
편강렬은 이강년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싸우고 의성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 통합을 추진해 정의부 조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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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강렬은 이강년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싸우고 의성단을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 통합을 추진해 정의부 조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돌석은 1878년 11월 26일(음력 11월 3일) 경상북도 영해 지역의 평민 농가에서 태어나 1896년 3월 13일 19세의 나이로 영해에서 100여 명을 이끌고 처음 거병한 평민 출신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뒤 다시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와 경상북도 여러 전장에서 싸
서유구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농정가·저술가로, 집안의 농학을 계승하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촌 생활과 생산 지식을 모았다.
30년 이상 편찬한 113권의 『임원경제지』에 농사·음식·의학·건축·의례·취미·시장 등 조선 농촌의 생활 세계를 집대성했다.
정지상은 고려 중기 예종과 인종 대에 활동한 문신이자 고려의 대표 시인이다.
「송인」을 비롯한 뛰어난 한시와 서경을 중심에 둔 독특한 시세계로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인물이다.
김유정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시인이다.
실레마을과 도시의 가난을 해학과 비애가 공존하는 단편으로 남기고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엄항섭은 임시정부 선전부장과 김구 주석의 판공비서로 활동하며 문서와 번역으로 독립운동의 뜻을 전한 독립운동가다.
광복 뒤 김구를 보좌하고 남북협상에 참여해 통일정부 수립을 모색했다.
이강년(1858~1908)은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과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1908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무관의 길을 떠나 고
정약전은 조선의 문관이자 실학자·저술가·생물학자로, 흑산도 유배지에서도 교육과 연구를 이어간 인물이다.
그는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직접 조사하고 채집한 결과를 정리한 《자산어보》를 남겼다.
고려 왕실에서 태어나 스스로 출가하고 불교와 유교의 학문을 폭넓게 익힌 승려다.
교장을 편찬하고 천태종을 개립해 선종과 교종의 화합과 교단 통합을 추진했다.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나 붓글씨와 데셍으로 회화를 익혔다. 해방 뒤 수배를 피해 16세에 월남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입학 뒤 6·25 전쟁으로 학업이 끊겼다. 한국현대미술가협회 활동과 해외 무대를 거쳐 물방울 회화를 창안하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시를 이어갔다.
해공 신익희는 189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3·1운동 뒤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 내무총장 등을 지냈다. 광복 뒤 국회의장을 지내고 국민대학관을 세웠으며,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세하러 가던 중 기차 안에서 숨졌다.
남궁억은 관료와 언론인, 교육자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학교와 교과서를 만들고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하며 노래와 교육으로 독립정신을 전했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로 왕실의 비극과 정치적 충돌을 겪은 인물이다.
궁중 생활과 사도세자의 죽음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한중록》을 남겼다.
최승로는 신라에서 고려로 건너온 고려 초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적 정치이념에 따른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성종 대 국가체제 정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공은 경허의 법을 계승해 간화선 수행을 널리 전하고 덕숭산을 중심으로 후학을 길렀다.
총독부의 불교정책과 창씨개명에 맞서 조선불교를 지키려 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다.
주기철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강요에 맞선 장로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다.
반복된 검속과 목사직 파면, 고문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순교했다.
월남 이상재는 주미공사 박정양을 수행해 청국 공사와 담판을 벌이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이끈 개화파 관료다. 국권을 잃은 뒤에는 무너지기 직전의 YMCA를 지키며 청년 운동을 이끌었고, 신간회 창립회장을 맡았다.
신윤복은 화원 가문 출신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조선 후기 풍속화를 남긴 화가다.
《혜원전신첩》과 《미인도》 등 작품을 통해 여성과 당시 사회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고려 제8대 국왕 현종은 암살 위기와 정변, 거란의 침입을 견디고 귀주대첩으로 국가적 위기를 넘긴 군주다.
전쟁 뒤 행정과 경제 제도를 정비하고 개경 방어 시설, 고려실록, 초조대장경 등 국가 기반을 다시 세웠다.
최형섭은 금속공학자이자 과학기술 행정가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연구 기반을 다졌다.
과학기술처 2대 장관으로 대덕연구 학원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한국과학재단의 연구개발 체제 정립에 힘썼다.
나철은 을사오적 암살 계획과 외교 활동을 펼치고 대종교를 창시한 독립운동가다.
그가 세운 교단은 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황현은 구한말의 선비이자 문인·시인·열사로,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저술해 격변기의 경험과 견문을 남겼다.
국권을 빼앗긴 현실에 절명시 4수와 순국으로 맞섰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득공은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역사 자료를 살핀 조선의 학자다.
『발해고』에서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보고 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에 배치해 한국사의 범위를 넓혔다.
정세운은 공민왕의 곁을 지키고 홍건적의 침입에 맞선 고려 후기의 장군이다.
1362년 총병관으로 고려군 20만 명을 지휘해 홍건적에게 빼앗긴 개경을 되찾았다.
이호왕은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발견한 바이러스학자다.
진단법과 예방 백신 한타박스를 개발해 유행성 출혈열 연구에 기여했다.
안경신은 평양 만세시위와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을 거쳐 광복군총영 결사대에 가담한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는 군자금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달하고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 폭탄 의거에 참여했다.
채응언은 1907년부터 1915년까지 한반도 중북부에서 항일전을 계속한 대한제국 마지막 의병장이다.
한국 병탄 뒤에도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무장투쟁을 이어가 국내 의병항쟁의 마지막을 상징했다.
박제가는 서얼의 신분적 한계를 넘어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한 조선의 실학자다.
《북학의》를 통해 상공업 진흥과 해외 통상, 과학기술 수용을 제안했다.
김윤후는 고려 후기 승려 출신 무신으로, 처인성에서 활을 쏘아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죽였다.
충주산성에서는 관노와 백정을 포함한 군민의 힘을 모아 70여 일의 포위 끝에 몽골군을 물리쳤다.
박춘석은 재즈 피아니스트와 밴드마스터로 출발해 작사·작곡·편곡·음반 제작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 작곡가다.
약 40년에 걸쳐 「비 내리는 호남선」과 「섬마을 선생님」 등 2700여 작품을 발표하고 여러 인기 가수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