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김취려, 거란 토벌과 의주 반란 진압으로 북쪽 국경 안정…한국사 인물

[고려] 김취려, 거란 토벌과 의주 반란 진압으로 북쪽 국경 안정…한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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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려는 고려 고종 때 거란 잔존 세력의 침입을 막는 데 공을 세운 무신으로, 1172년 태어나 1234년 5월 21일 강도에서 63세로 사망했다. 몽골군·동진군과 연합해 강동성을 포위 공격한 끝에 거란군의 항복을 받아냈고, 의주 반란을 토벌한 뒤 거란의 잔여 무리까지 토벌해 북쪽 국경을 안정시켰다.

고려 무신 김취려의 가계와 관직

김취려는 1172년 고려에서 태어난 무신으로, 이름을 김취려(金就礪) 또는 김취려(金就呂)로 썼으며 본관은 언양이다. 증조부 김수는 신호위 별장 동정, 할아버지 김언량은 금오위 섭낭장이었고, 아버지 김부는 금오위대장군과 예부상서를 지냈다. 어머니는 검교장군 행낭장 주세명의 딸인 주씨다.

김취려는 아버지의 지위에 따른 부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정위가 됐다. 이후 동궁위에서 근무하고 중랑장과 장군을 거쳐 대장군에 올랐다. 부인은 복야 언통의 딸인 조씨이며, 아들로 김전·김단병·김식이 있고 딸은 참지정사 이지위와 혼인했다. 김단병과 김식은 전투에서 전사했다. 김전은 태부를 지냈으며, 손자 김양감은 첨의중호와 언양군을 지냈고 충렬왕과 충선왕의 후궁 숙창원비의 아버지가 됐다. 다른 손자로 김군·김중보와 태학사 김변이 있다.

거란 유민의 침입과 서북면 전투

1216년 고려 고종 때 몽골군에 쫓긴 거란의 잔존 세력이 서북면으로 들어왔다. 금산과 금시는 대요수국왕을 칭했으며, 이들이 이끈 거란군은 서북면에서 약탈과 행패를 벌였다. 고려 조정은 중군·우군·후군으로 구성된 3군을 출정시켰고, 김취려는 섭상장군으로 후군을 지휘했다. 그는 이철 등과 함께 서북면에서 거란군을 격퇴했지만, 이 전투 과정에서 장남을 잃었다.

거란군은 대동강을 건너 서해도로 진출했고 개경을 위협한 뒤 장단을 지나 동주인 철원을 함락하며 남하했다. 고려는 3군을 5군으로 바꾸어 저지에 나섰으나 패배했으며, 김취려도 분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최충헌이 군대를 다시 편성하면서 김취려는 전군병마사를 맡았다. 그의 전군은 패배를 겪으면서도 여러 차례 승리하며 거란군을 제주까지 추격했고, 박달현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타격을 입은 거란군은 더 남하하지 못하고 대관령을 넘어 등주와 함주를 거쳐 여진 지역으로 들어갔다. 김취려의 군대는 여진과 맞닿은 국경까지 추격했다. 거란군이 여진 병력을 보강해 다시 침입했을 때 김취려는 병으로 개경에 돌아가야 했다.

강동성 포위와 거란 세력의 항복

김취려는 1218년 상장군으로서 판예빈성사를 겸했다. 고려 조정은 조충을 중군 원수 겸 서북면 원수로, 김취려를 병마사로 임명하고 전군·좌군·우군·후군을 편성했다. 조충이 중군을 지휘하는 원수를 맡고 김취려는 중군 병마사로서 부원수 역할을 수행했다.

조충과 김취려가 이끄는 고려군의 압박을 받은 거란군은 평양 동쪽의 강동성으로 들어갔다. 합진이 이끄는 몽골군과 완안자연의 동진군도 강동성으로 향했다. 1219년 고려군은 두 외국 군대와 연합해 강동성을 포위 공격했고, 안에 있던 거란군은 항복했다.

강동성 전투 뒤 합진의 요청으로 조충과 김취려가 참여한 가운데 고려와 몽골은 형제맹약을 맺었다. 김취려는 몽골 원수를 전송하던 중 서경 재제사에 임명돼 서경에서 제사를 지냈다.

의주 반란 진압과 관직 생활

의주에서는 한순과 다지가 여러 성과 연계해 반란을 일으켰다. 김취려는 우군을 이끌고 중군·후군과 함께 토벌에 나섰으며, 다음 해 추밀부사에 오른 뒤에는 중군을 지휘해 진압을 마쳤다. 이어 부하를 보내 남은 거란 세력까지 토벌함으로써 북쪽 국경을 안정시켰다.

김취려는 1221년 추밀사·병부상서·판삼사사에 임명됐고, 1222년에는 금자광록대부·참지정사·판호부사가 됐다. 1228년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판병부사를 거쳐 1230년 평장사·판이부사에 올랐다. 1232년 3월에는 수대부인 수태부·개부의동삼사·문하시랑평장사가 됐다.

최우의 무인정권이 1232년 6~7월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기자 김취려도 강도로 이주해 문하시중에 올랐다. 다음 해에는 특진과 주국을 받았다. 그는 1234년 5월 21일 강도에서 63세로 사망했으며, 같은 해 7월 12일 진강현 대곡동 서쪽 기슭에 묻혔다.

엄정한 지휘관으로 남은 이름

김취려는 성품이 곧고 청렴했으며 군기를 엄정하게 다스린 인물로 평가된다. 부하들을 고르게 아꼈고 전투에서는 기발한 계책을 활용해 큰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거란의 침입과 의주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높은 관직에 올랐으며, 사후에는 위열이라는 시호를 받고 고종의 묘정에 배향됐다.

1983년 6월 강화도에는 김취려의 사적비가 세워졌다. 그의 생애는 KBS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안성민이, MBC 드라마 무신에서 전헌태가 연기했다. 김취려의 묘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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