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프로레슬러 김일은 1929년 2월 24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서 태어나 1957년 역도산 체육관 문하생으로 들어가 프로레슬링을 배웠고, 1967년 제23대 WWA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올랐다. 2006년 10월 26일 향년 78세로 사망했다.
고흥에서 시작한 선수의 길
김일은 1929년 2월 24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프로레슬러다. 일본어 이름은 오키 긴타로(大木金太郎)다. 그는 1948년 씨름 선수로 출발해 1957년까지 씨름판에서 활동했다. 같은 해 역도산 체육관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프로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역도산의 제자가 됐다.
박치기로 오른 세계 정상
스승 역도산이 1963년 사망한 뒤 김일은 박치기를 주특기로 내세워 여러 정상급 타이틀을 차지했다. 1963년부터 1972년까지 극동 헤비급 챔피언과 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을 거쳐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도 올랐다. 구체적으로 1963년 WWA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서울 극동헤비급챔피언을 차지했다. 1966년에는 도쿄 올아시아태그 챔피언에 올랐고, 1967년에는 제23대 WWA 세계헤비급챔피언이 됐다. 1972년에는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헤비급 태그챔피언을 차지했다.
김일은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 격인 장영철, 천규덕 등과 함께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꾸렸다. 현역 시절에는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와 라이벌 관계를 이뤘다. 훗날 김일이 병환으로 입원했을 때 안토니오 이노키가 문병하기도 했다. 김일은 1995년 현역 생활을 마쳤으며, 그의 제자로는 이왕표 선수가 있다.
사업 실패와 오랜 투병
김일은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사업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선수 생활에서 비롯된 후유증과 배우자의 사망을 겪었고, 1987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1994년 1월 귀국한 그는 서울 을지병원에 입원해 투병을 이어갔다. 2006년 10월 26일 만성신부전증과 심장혈관 이상에 따른 심장마비로 그곳에서 사망했으며, 향년 78세였다.
훈장과 한국 프로레슬링의 기억
김일은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명예고문위원을 지냈다.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2001년에는 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 겸 스포츠문화행정특보위원을 역임했다.
김일은 씨름 선수에서 출발해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링을 배웠고, 박치기를 앞세워 극동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헤비급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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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김일 (프로레슬링 선수)」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