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유구, 『임원경제지』로 이룬 조선 농촌 생활 지식의 집대성…한국사 인물

[조선] 서유구, 『임원경제지』로 이룬 조선 농촌 생활 지식의 집대성…한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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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는 1764년에 태어나 1845년에 세상을 떠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농정가·저술가로, 집안의 농학을 이어받아 113권 분량의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

농학을 가학으로 이어받은 문신

본관은 대구이며, 자는 준평, 호는 풍석, 시호는 문간이다. 대제학 서명응의 손자이자 이조판서 서호수와 김덕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당숙 서철수에게 입양됐다.

1790년 정조 14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대교·검열·부제학을 비롯한 내직과 군수·관찰사 등의 외직을 거쳤다. 1797년에는 왕명을 받아 『향례합편』을 편집했다. 35세에 순창군수로 근무할 때 정조가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을 내리자, 각 도에 농학자 한 사람씩을 두고 지역별 농업 기술을 조사하게 한 뒤 내각에서 전국 규모의 농서로 엮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정조의 윤음은 가학이기도 한 농학을 체계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관직을 떠나 농촌에서 시작한 집대성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 숙부 서형수가 김달순의 역모 사건에 연루돼 정계에서 밀려나자, 서유구도 1806년 스스로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 시기에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토대로 농촌 생활과 생산 지식을 집대성하는 작업에 힘을 쏟았다.

서유구는 아버지 서호수의 『해동농서』와 할아버지 서명응의 『고사신서』 농포문을 비롯해 『증보산림경제』·『과농소초』·『북학의』·『농가집성』·『색경』 등 국내 농서와 중국 문헌 800여 종을 참조했고, 아들 서우보의 도움을 받아 30년 이상의 시간을 편찬에 들였다. 그 결실이 만년에 완성한 『임원경제지』다.

환갑에 다시 관직으로 돌아온 그는 전라 관찰사와 의주 부윤·대사성·강화부 유수를 지냈으며, 공조·형조·예조·호조·이조·병조의 판서와 대사헌·상호군·우참찬·좌참찬·대제학 등 중앙 요직을 두루 맡았다. 1838년 헌종 4년에는 다시 대사헌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원경제지』를 완성했지만 재정이 부족해 출판하지 못했다. 경기도 남양주 두릉에서 시봉하던 시사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82세로 눈을 감았다고 전한다.

흉년의 현장에서 실천한 농정

1834년 전라감사로서 호남의 노령 남북을 순찰하던 그는 흉년으로 곤궁해진 농민들의 형편을 목격했다.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 편에 고구마 종자를 구해 달라고 부탁한 뒤 이를 각 고을에 나눠 주고 재배를 장려했다.

고구마 보급에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강필리의 『감저보』와 김장순의 『감저신보』, 중국과 일본의 관련 농서를 참고해 『종저보』도 저술하고 보급했다. 농업 정책을 다룬 『경계책』을 비롯한 글과 상소를 통해 영농법의 개혁도 거듭 주장했다.

113권에 담은 조선 농촌의 생활 세계

『임원경제지』는 113권, 2만8천 항목, 252만자로 구성된 백과사전이며 양반의 농촌생활과 농업을 중심으로 모두 16개 부문을 담았다. 글만이 아니라 여러 그림과 도보를 실었고, 조선 각지의 시장 날짜까지 기록했다.

『본리지』는 전제·수리·토양·농업기상·개간·경작·비료·종자·곡물 재배·재해 예방·농가월령·농기와 관개 시설을 다뤘다. 『관휴지』는 산나물·해초·채소·약초의 이름과 파종·재배법을 정리했고, 『예원지』는 50여 종의 화훼를 설명했다. 『만학지』에는 31종의 과일류와 15종의 과류, 25종의 목류를 비롯한 초목의 품종·재배·벌목·저장법이 담겼다.

『전공지』는 뽕나무와 비단·무명·직조·염색을, 『위선지』는 자연현상에 따른 농업기상 예측과 천문관측을 논했다. 『전어지』는 가축 사육과 질병 치료, 야생동물 사냥, 어류와 어구를 설명했다. 『정조지』는 식품의 의약학적 성격과 음식·조미료·술 제조법을 다뤘으며, 『섬용지』는 건축기술·도량형·공작기구·농기구·복식·실내장식·교통수단을 중국식과 조선식으로 비교했다.

『보양지』는 식이요법·정신수도·육아법·계절별 섭생을 양생월령표와 함께 제시했다. 28권에 이르는 『인제지』는 의약 지식을 중심으로 구황 방법과 260종의 구황식품까지 소개했다. 『향례지』는 지방의 관혼상제와 의식을, 『유예지』는 독서법을 포함해 선비가 익히던 여러 기예를, 『이운지』는 선비의 취미생활을 정리했다. 『상택지』는 조선의 지리를 다뤘고, 마지막 『예규지』는 수입에 맞춘 지출·절약·금지·대비와 무역·재산 경영 등 사회경제 문제를 논하면서 전국의 장날도 수록했다.

생활을 풍요롭게 하려 한 실학

서유구는 『난호어목지』·『경솔지』·『옹치지』·『누판고』·『풍석전집』·『번계시고』 등도 남겼다. 그의 학문은 백성의 생활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모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리학적 논의에 머무는 선비들을 향해서는 “흙으로 끓인 국과 종이로 만든 떡”을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현대적 평가에서 다산 정약용이 법과 제도의 개혁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지향한 인물로 대비된다면, 서유구는 『임원경제지』로 백성이 더 잘사는 풍요로운 나라를 그린 인물로 평가된다. 1930년대 국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책의 가치도 주목받았지만 방대한 분량과 어려운 한문 때문에 번역이 쉽지 않았다. 정명현과 뜻을 함께한 이들은 2008년 3월 임원경제연구소를 세워 본격적인 번역에 들어갔으며, 2015년 설립된 풍석문화재단은 번역 지원·학술대회·요리연구소 운영 등의 사업을 이어갔다.

서유구는 애민정신에서 비롯되어 『임원경제지』에 하나라도 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정보를 담으려고 애썼다. 이 책은 지금 농촌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365일 일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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