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년(1858~1908)은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과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1908년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무관의 길을 떠나 고향으로
운강 이강년은 1858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이기태와 의령남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복영의 딸이며, 할아버지는 이덕의다.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낙인, 호는 운강이다.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 이보의 18대손이기도 하다.
이강년은 1880년 무과에 합격한 뒤 용양위부사과로서 선전관을 맡았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관직에서 물러나 문경으로 돌아갔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에는 문경 동학군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탐관오리를 상대로 싸웠다.
문경에서 시작한 첫 의병
1895년 명성황후 민씨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강년은 가산을 내놓아 거병을 준비했다.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그는 안동관찰사 김석중과 순검 이호윤·김인담을 붙잡았고, 농암 장터에 모인 군중 앞에서 이들을 효수했다.
이강년은 이어 제천으로 가서 유인석을 스승으로 섬겼다. 유인석 의병부대에서는 유격장을 맡아 문경·평천·조령 일대에서 활동했다. 같은 해 4월 제천에서 장기렴이 지휘한 관군에 패한 뒤 유인석이 요동으로 이동하자, 이강년도 부대를 해산하고 그를 따라갔다. 요동에서 3년을 지낸 뒤 귀국한 그는 단양 금채동에서 학문에 힘썼다.
정미의병을 이끈 호서창의대장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 뒤 고종이 강제로 선위하고 정미칠조약에 따라 한국군대가 해산되자 이강년은 영춘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원주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의 부대와 힘을 합쳐 충주를 공격했으며, 7월 7일에는 제천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전투는 여러 지역으로 이어졌다. 이강년 부대는 9월 16일 싸릿재, 9월 27일 죽령, 10월 5일 고리평, 10월 23일 백자동에서 큰 전과를 거뒀다. 그해 12월 각도의 의병들이 서울 공격을 목표로 양주에 모여 13도연합의병부대를 조직하자, 이강년은 호서창의대장으로 참여했다.
서울 진격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강년은 1908년 봄부터 다시 휘하 장병들을 이끌었다. 2월 17일 용소동, 2월 26일 갈기동, 3월 12일 백담사, 4월 안동 서벽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가평·인제·강릉·양양 일대에서도 전투를 이어갔다.
그의 활동 범위는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북도에 걸쳐 있었다. 김상태·이만원·백남규·하한서·권용일·윤기영을 비롯한 장졸들은 모두 이 지역 출신이었다. 이들은 현지 지리에 밝았고 엄격한 군율로 부대의 기강을 유지했으며, 지방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이강년 의병부대는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한 의병세력이었다.
체포와 교수형
이강년은 1908년 6월 4일 청풍·작성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이다 발목에 총탄을 맞아 붙잡혔다. 수원의 일본수비대에 갇힌 그는 7월 8일 서울 일본군헌병사령부로 압송됐고, 다시 평리원으로 옮겨져 9월 22일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08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시신은 그의 유언에 따라 두 아들 이승재·이긍재와 도선봉장 권용일에게 인계됐다. 처음에는 과천 효령대군 묘 아래에 장사됐으며, 이후 제천을 거쳐 상주군 화북면 장암 뒷산으로 이장됐다. 자녀로는 이승재·이긍재·이명재가 있다.
기록과 추모
이강년이 남긴 저서로는 『운강문집』이 있다. 제자들과 의병 시절 부하들은 그의 활동을 담은 『운강선생창의일록』을 엮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의 항일 이력으로 인해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살게 됐다. 가족들이 숨어 지내는 사이 일본인 3명과 일제 경찰로 일한 한국인 1명이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일대에 있던 이강년 소유 토지 3,000여 평을 강탈해갔다고 전해진다. 문경 총독이라는 경찰과 한국인 경찰 이모 씨는 그의 아들을 총칼로 협박해 토지를 매도한 것처럼 강제로 도장을 찍게 했다.
이강년은 관직을 떠난 뒤 1896년 문경에서, 1907년 영춘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고, 주로 강원도·충청도·경상북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는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에서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으로 활동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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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이강년 (1858년)」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 이강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