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가 20일 본관 1층과 2층에서 개원 25주년 특별전 ‘산책(散策)-예술과 함께 걷는 치유의 첫걸음’을 열었다. 2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국립암센터가 주최하고 문화예술 기획사 아트앤이 주관했으며, 환자와 가족, 의료진, 지역사회가 병원 안에서 작품과 이야기를 함께 만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암 진료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 개원 25년을 돌아보는 방식을 기념식이나 성과 발표에 한정하지 않고 ‘걷듯이 감상하는 전시’로 구성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행사는 약 60분 동안 관람객이 전시장을 산책하듯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시 주제 소개에 이어 작가와의 대화, 기부자 이야기를 전하는 ‘도너월 스토리’,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이 연결됐다. 작품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설명과 기부자의 사연, 관람객의 이동 경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은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이 예술을 매개로 같은 장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설계한 행사로 평가된다.
전시 제목에 포함된 ‘치유’는 의료행위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국립암센터도 이번 행사를 특정 질환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자와 가족이 진료와 대기, 이동을 반복하는 병원 공간에 예술적 경험을 더하고, 의료진과 지역사회까지 공감의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에 가깝다. 건강 정보를 받아들이는 독자에게도 예술 감상과 의학적 치료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진료 공간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다
암센터 본관 1층과 2층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구성은 작품 감상을 일상적인 병원 동선 안으로 들여놓는다. 별도의 미술관을 찾아가야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방식과 달리, 환자와 보호자, 직원이 오가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만나게 하는 접근이다. 이는 병원 공간을 진료와 검사만 수행하는 기능적 장소로 보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머물며 감정을 나누는 생활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특히 ‘도너월 스토리’가 전시 과정에 포함된 점은 국립암센터의 25년을 건물이나 제도의 연혁만으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기부자의 이야기를 작품 설명, 작가와의 대화와 나란히 배치하면서 기관의 시간 속에 참여한 사람들을 조명했다. 환자와 가족 역시 앞으로 운영될 참여형 전시를 통해 단순한 관람객을 넘어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표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국립암센터가 말하는 열린 문화공간의 핵심도 이처럼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에 있다.
양한광 국립암센터 원장은 이번 전시가 병원 공간에 예술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와 가족, 의료진, 지역사회가 서로의 이야기를 만나고 공감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전시의 초점이 작품의 규모나 유명세보다 관계 형성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암 치료를 둘러싼 경험은 환자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가족과 의료진에게도 연결되는 만큼, 각자의 위치에서 겪은 이야기를 안전하게 마주할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이번 특별전의 중요한 의미로 읽힌다.
25년을 돌아보고 다음 시간을 여는 ‘산책’
국립암센터는 특별전에 25년 전 출발을 돌아보고 새로운 25년을 향해 또 하나의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산책’이라는 이름도 속도보다 과정에 무게를 둔다. 관람객이 정해진 설명을 빠르게 소비하기보다 작품과 사연 앞에 잠시 머물고, 다시 이동하면서 전체 전시를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개원 기념행사를 기관 내부의 자축으로 끝내지 않고 환자와 가족, 직원, 지역 작가가 함께 접근할 수 있는 형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이번 특별전은 하루의 행사로만 끝나는 구성이 아니다. 국립암센터는 환자와 가족, 직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어지는 전시’를 운영하고 지역 작가를 위한 전시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 공개된 내용만으로 구체적인 작품이나 참여 방식까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시의 주체를 전문 작가에게만 한정하지 않겠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병원을 이용하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표현과 감상의 과정에 참여하고, 지역 작가에게도 공간을 여는 구조다.
이 같은 계획이 실제로 이어지면 국립암센터의 전시는 개원 25주년을 기록하는 일회성 장면에서 구성원이 계속 채워가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치유’라는 표현을 과장된 건강 효능으로 소비하지 않는 일이다. 예술은 암 진단과 치료를 대체하지 않으며, 이번 전시 역시 의학적 효과를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 전시가 밝힌 목적은 병원 안에서 이야기를 만나고 공감하는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때 문화와 의료가 각각의 역할을 지키면서 조화롭게 만날 수 있다.
환자·가족·의료진·지역사회를 잇는 열린 공간
국립암센터가 제시한 참여 범위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 직원, 기부자, 지역 작가와 지역사회까지 넓다. 이들은 병원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전시에서는 같은 공간의 관람자이자 이야기의 주체가 된다. 작가와의 대화는 작품을 만든 사람의 관점을 전하고, 도슨트는 주요 작품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며, 기부자 이야기는 기관을 지지해 온 사람의 경험을 드러낸다. 여기에 참여형 전시가 이어지면 병원 구성원의 목소리도 전시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글로벌 독자에게도 이번 소식은 한국의 암 전문 국가기관이 개원 기념을 어떻게 공공적 경험으로 바꾸려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국립암센터는 1층과 2층의 일상적 공간을 활용해 관람의 문턱을 낮추고, 약 60분의 프로그램 안에 작품 감상과 대화, 기부의 기억을 함께 배치했다. 거대한 시설 변화보다 기존 공간의 쓰임을 새롭게 구성해 사람 사이의 접점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의료기관이나 지역 문화공간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결국 ‘산책’이 전하는 건강의 메시지는 특정 작품이 질병을 낫게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치료가 이뤄지는 장소에서도 사람은 감상하고 말하며 타인의 경험을 들을 수 있고, 병원은 그런 만남을 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제안에 가깝다. 앞으로 이어지는 전시가 환자와 가족, 직원, 지역 작가의 참여를 어떻게 담아낼지가 이 시도의 지속성을 가를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어느 곳의 독자든 병원을 단지 치료 기술이 제공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와 공감도 오가는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한국의 전시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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