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정권의 붕괴를 겨냥한 경제 압박에 나서면서 중국·튀르키예·이라크 등 이란의 주요 교역국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이란 경제 압박 계획을 공개하겠다며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공조된 경제적 고립 작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국들에는 “우리 편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맞설 것인지 둘 중 하나라고 말할 것”이라며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날 “이란에 어떤 형태로든 생명줄을 제공하도록 자국의 금융기관, 기업, 공항 또는 정부 기관에 허용하는 모든 국가는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석유 밀수, 통화스와프, 현금 송금, 환전소, 선박 등록, 위장회사 등 이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란산 석유 최대 90% 사들이는 중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은 이란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주요 석유 구매국으로, 서방 제재 속에서도 이란산 석유 수출량의 최대 90%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국과 이란의 무역액은 석유를 빼고도 약 100억달러(약 13조9천억원)로 추산됐다.
미국은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된 뒤 중국의 일부 소규모 정유업체를 제재했지만, 이란과의 원유 거래를 지원하는 중국 주요 은행까지 제재하지는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이런 방침을 실제로 밀어붙일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최대 시험대는 중국”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란과의 교역 차질이 중국 경제에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의 전체 에너지 수입에서 이란산 석유 비중은 미미하고 대체 공급원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중국-이란 관계 전문가 윌리엄 피게로아는 NYT에 “중국의 이란산 석유 수입 능력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중국 경제에 재앙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견제할 전략적 수단으로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제재와 압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모든 당사자가 외교적 방법으로 이견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진핑 방미·중간선거 앞둔 미국의 부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 달 유엔총회 기간에 맞춰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 지도자의 워싱턴 방문은 10년 만이다. 이 시점에 중국을 겨냥한 제재가 나오면 미·중 갈등이 다시 불붙을 수 있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 등으로 맞대응하면 미국 경제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크리스 케네디는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보다 새로운 경제전쟁을 우선시할 의향이 있느냐가 문제”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심각한 파장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옵시디언 리스크 어드바이저스의 브렛 에릭슨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엇을 제시하더라도 시 주석이 이처럼 공개적이고 중대한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란과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는 “중국에 누구와 거래할 수 있고 누구와 거래할 수 없는지를 미국이 결정하도록 자발적으로 허용하라는 것”이라며 “중국은 그런 선례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UAE는 거래 중단…튀르키예·파키스탄은 버틸 듯
이란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이라크, 바다를 사이에 둔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UAE는 18일 미국과 협의를 거쳐 이란과의 모든 무역·상업 교류·금융 거래를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UAE는 이란이 외화를 조달하고 세계 교역망에 접근하는 핵심 통로로, ‘이란의 허파’로 불려 왔다.
튀르키예는 2022년 한 해에만 이란에 110억달러어치(약 15조2천억원) 상품을 수출했다. 블룸버그 집계로는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인 튀르키예가 중국 다음으로 이란산 제품을 많이 사들인다. 런던 부르스 앤 바자 재단의 에스판디아르 바트망겔리드 최고경영자는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정치적, 지정학적으로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도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제3국 제재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르주 외즈첼리크 런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은 “이란의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 부과는 (기존 제재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이며, 감시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재무부 출신으로 제재 자문회사를 공동 설립한 클레어 오닐 맥클레스키는 “현시점에서 광범위한 공개적 위협만으로는 제3국의 행동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한때 대부분의 에너지를 이란에서 들여왔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미국 제재로 이란산 석유 구매를 전면 중단했다. 인도는 지금도 이란에 식품과 의약품 등을 공급하는 주요 교역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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