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청문회를 통해 대한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을 짚었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증인으로 출석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해 사과했으나 제기된 각종 의혹엔 대체로 부인했다.
이번 청문회는 국가대표팀이 졸전으로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후폭풍 속에 추진됐다. 여야 의원들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전 감독 선임 절차 등 국가대표팀 관련 문제를 비롯해 축구협회 운영 전반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재정 문체위원장은 “대한민국 축구는 오랜 기간 국민께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해왔다. 스포츠 이상”이라면서 “최근 감독 선임이나 운영 공정성, 투명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 제기가 있었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국민의 우려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증인 15명 채택, 이임생·박항서는 불참
청문회에는 총 15명이 증인으로 채택됐고, 정몽규 전 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감독, 이용수·김병지 축구협회 부회장, 김승희 전무 등이 출석했다. 증인 중 이임생 전 협회 기술총괄이사(현 캄보디아 나가월드 테크니컬 디렉터)와 박항서 전 부회장(현 태국 2부 깐짜나부리 파워 FC 감독)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재임 기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일련의 논란과 북중미 월드컵 결과가 미흡한 것에 대해서 죄송하다. 책임감을 통감하고 국민과 팬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송구스럽다”면서 “앞으로 기업인으로서 경영에 집중하고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홍명보 전 감독도 “월드컵 결과에 대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대표팀에 보내주신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오늘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제가 져야 할 책임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13년 사조직 운영 질타, 의혹엔 항변
여야 의원들은 월드컵 부진을 비판하는 동시에, 정몽규 전 회장이 이끈 지난 13년 동안 축구협회가 ‘사조직’처럼 운영돼왔다며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질타했다. 집중적으로 질의를 받은 정 전 회장과 홍 전 감독은 ‘카르텔’이나 ‘특혜’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정 전 회장은 클린스만 전 감독이나 홍 전 감독의 선임에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고, 이미 월드컵 전 사의를 밝히고 물러난 만큼 차기 선거엔 나서지 않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홍 전 감독 또한 선임에서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축구협회가 2년 전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에 따른 징계 요구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 정몽규 전 회장을 위한 사적인 대응이라거나, 문체부 차관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축구협회 부회장을 맡은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문체부 징계 요구에 불복해 낸 항소 관련해선 취하하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잇따랐고, 축구협회장 직무대행인 이용수 부회장은 “이사회를 통해 의견을 묻겠다”고 답했다.
홍명보, 현장 참여를 통한 변화 강조
정회를 포함해 12시간가량 이어진 청문회 말미에는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국가대표를 거친 축구인들이 축구협회의 ‘카르텔’ 등을 지적하는 데 대한 홍 감독의 의견을 묻는 질의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홍 전 감독은 “협회가 그런 목소리를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축구협회 조직 문화가 어떻게 하면 바뀌겠느냐’고 묻자 홍 전 감독은 “어느 누구하나가 일을 잘해서 된다고 보진 않는다. 모든 축구인이 노력해서 다 같이 힘을 모아 바꾸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구조라는 것을 저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를 알고 있으면 현장에 들어와서 본인이 노력해 바꿀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될 듯하다”면서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친구들이 들어와서 어려운 점을 바꿔주면 좋겠다”고 했다.
축구협회 전무도 지낸 그는 “밖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것도, 얘기하는 것도, 쓴소리하는 것도 좋지만, 안에서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그러다 보면 본인들이 책임감 갖고 더 바꿀 수 있을 거란 생각”이라면서 “척박한 환경이 많은데, 들어와서 그런 곳에서 일하면 더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전 감독은 청문회를 마치고 나서 취재진과 만나서는 “이렇게 마지막이 청문회 자리가 돼 아쉽지만, 그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선 다 설명한 것 같다”며 “(월드컵)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은 진다”고 덧붙였다.
세 차례 정회 끝 결의안 채택
이재정 위원장은 시작에 앞서 청문회에 대해 “대표팀의 성적 부진만을 따지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축구 거버넌스 전반에 대한 지혜를 모색하고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으나 취지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장면들도 있었다. 월드컵 경기 결과에 대해 “왜 졌느냐”고 일방적인 면박을 주거나 때아닌 홍 전 감독 자녀의 병역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축구협회 전·현 관계자들의 답변도 의혹을 해소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각종 질문에 “이미 사퇴했다”거나 “후임의 몫”이라는 회피성 답변을 한 정 전 회장을 비롯해 고위 관계자들에게서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날 청문회는 오전 10시 시작해 국회 본회의 개최에 따른 정회를 포함해 세 차례 정회를 거쳐 오후 10시40분께 끝났다. 문체위는 증인 신문을 마친 이후엔 축구협회 공정성·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이행 촉구를 위한 결의안을 마련해 상정해 채택했다. 축구협회 차기 회장 선거와 관련해선 대한체육회가 제도 개선의 기반을 닦았고, 북중미 월드컵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출범한 케이(K)-축구 혁신위원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