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옥윤(吉屋潤)은 작사와 작곡, 편곡뿐 아니라 재즈 색소폰 연주, 음반 제작,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한 대한민국의 음악가다. 그의 생애에는 치의학을 공부한 학생, 한국 전쟁에 참전한 군의관, 가수에게 노래를 써 준 작곡가의 이력이 함께 자리한다.
1927년 2월 27일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다. 어린 시절 이름은 최종수(崔鍾秀)였고, 1931년 최치정(崔致禎)으로 개명했다. 음악 활동에 사용한 이름에는 길옥윤 외에도 일본식 예명 요시야 준(吉屋 潤), 영어식 예명 준 요시야(June Yoshiya)가 있다.
1932년 평북영변보통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니다 전학한 뒤 1938년 평남평양종로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44년에는 평남평양고등보통학교를 마쳤다. 그해 3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치의학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치의학을 공부하며 재즈 무대에 섰다
그가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간 때는 일제강점기 말기였다. 예과 2학년이던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고, 본과 1학년이던 1946년 5월경에는 미8군 무대에서 재즈 색소폰 연주자로 데뷔했다. 치과대학 재학 중 음악 활동도 시작한 것이다.
미8군 무대 활동 3년 차였던 1949년 6월경에는 그곳에서 박춘석을 처음 만났다. 1950년 3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전문부를 졸업한 뒤에도 같은 무대에서 색소폰 연주를 이어 갔다.
한국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길옥윤은 대한민국 육군 군의관 중위로 임관했다.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여한 기간은 1953년 7월 27일까지다. 치의학을 전공하고 재즈 무대에 섰던 청년의 이력에 전시 군의관 복무가 더해졌다.
복무 중인 1953년 3월에는 육군 대위로 진급했다. 이듬해 6월 대위로 예편한 뒤에도 재즈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재즈클럽 회장도 역임했다.
현인에게 곡을 쓰고 관악기 연주자를 연구했다
작곡가로서 남긴 구체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는 1963년 가수 현인에게 써 준 노래 ‘내 사랑아’다. 이 곡에서는 가사와 곡을 모두 맡았다.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는 활동과 함께, 가수가 부를 노래를 만드는 작사·작곡 작업도 수행했다.
1966년에는 가수 패티 김과 결혼해 그의 첫 번째 남편이 됐으나 7년 뒤 이혼했다. 이후 28년 연하인 전연란과 재혼했다. 유일한 남동생은 부산 조은치과 원장 최치갑이며, 최치갑의 처가 쪽 손윗동서로 ‘장 서방’이라 불린 이는 전직 삼성 스카우터 장효조의 삼촌이다.
음악 활동을 이어 가던 1981년에는 경희대학교 대학원 치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 제목은 ‘관악기 연주자의 교합상태에 관한 연구’다. 재즈 색소폰 연주 경력을 지닌 그의 치의학 연구는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교합상태를 대상으로 삼았다.
‘서울의 찬가’와 훈장으로 남은 음악가다
길옥윤은 1995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같은 달 21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예협회장으로 영결식이 치러졌으며, 운구 때 패티 김은 눈물을 흘리며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천주교 공원묘지에 마련됐다.
사후에는 문화훈장 보관장이 추서됐다. 서울시는 1995년 10월 23일 세종로 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를 세웠다. 그의 음악은 장례식에서 부른 노래로, 도시의 공원에 세운 기념물로 남았다.
오늘날 길옥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연주와 창작을 함께한 활동, 그리고 그가 남긴 노래를 기린 흔적이다. 현인을 위해 작사·작곡한 ‘내 사랑아’, 마지막 길에 울려 퍼진 ‘서울의 찬가’, 사후의 문화훈장과 노래비가 그 음악가의 생애와 업적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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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길옥윤」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