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1166억3000만달러로, 독일과 일본의 흑자를 더한 금액보다 많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실린 국제통화기금(IMF) 주요국 통계를 25일 보면, 세 나라 수치를 맞대 볼 수 있는 1996년 1분기 이후 한국이 두 나라 합계를 앞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흑자를 키운 반도체 수출
이번 흑자의 원동력으로는 반도체가 꼽힌다. 국가데이터처 자료를 보면 2분기 반도체 수출액은 1138억9000만달러로 1년 새 181.6% 뛰었다. 3분기에는 1480억2000만달러가 수출돼 증가율이 218.7%에 달했다. 범위를 메모리 반도체로 좁히면 3분기 수출액이 1307억달러, 증가율은 311.6%였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고성능 메모리를 찾는 곳이 많아진 데다 반도체 가격까지 올라 수출 금액이 불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양을 팔아도 값이 올라 손에 쥐는 금액이 커진 셈이다.
올해 연간 흑자 전망
IMF는 10월 세계경제전망(WEO)에서 한국이 올 한 해 4219억4600만달러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수치대로라면 190개 국가·지역 중 중국(8632억500만달러) 다음 자리로, 지난해 5위에서 세 계단 올라선다. 흑자가 전년보다 늘어나는 폭은 2988억9200만달러로 비교 대상 중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총생산(GDP)과 견준 흑자 비율은 18.8%로 예상되는데, IMF 통계가 남아 있는 1980년 이래 가장 높고 종전 최고였던 1998년의 10.1%를 크게 넘는다.
한국은행도 눈높이를 올렸다. 한은은 22일 발표한 경제상황 평가에서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올해 흑자가 앞서 제시한 4500억달러보다 많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반도체 수출 증가가 계속되면 한 해 흑자가 5000억달러 가까이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흑자 1231억달러의 약 4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독일·일본·중국과 견준 성적
2분기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36개국 순위에서 1위는 1937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중국이었고 한국이 바로 뒤를 이었다. 3·4위는 독일(522억8000만달러)과 일본(506억2000만달러)으로, 두 나라를 합쳐도 1028억9000만달러에 그쳐 한국보다 137억4000만달러 모자랐다.
1년 사이 늘어난 폭도 크게 갈렸다. 지난해 2분기 283억9000만달러였던 한국 흑자는 약 4.1배로 불었지만, 같은 기간 독일은 11.9%, 일본은 5.0%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중국과의 차이도 줄었다. 중국 흑자 대비 한국 흑자의 비율은 전년 동기 22.7%였으나 이번에는 60.2%가 됐다.
상반기 전체로 넓혀도 한국(1910억1000만달러)은 중국(3780억3000만달러)에 이은 2위였고, 독일(1263억9000만달러)과 일본(1121억2000만달러), 노르웨이가 그 아래였다. 하반기 첫 두 달인 7~8월에도 한국은 881억9000만달러 흑자를 내 독일·일본 합계 808억2000만달러를 73억7000만달러 웃돌았다.
가격에 기댄 흑자의 위험과 과제
다만 이런 호황이 길게 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IMF도 한국 흑자가 2028년까지는 4000억달러를 넘다가 2029년에는 2956억5600만달러로 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값이 오른 덕에 흑자가 커진 구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 경계한다. 세계적으로 AI 투자 열기가 식거나 경쟁사들이 메모리를 더 많이 내놓으면 가격을 둘러싼 경쟁이 거세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메모리를 직접 조달하는 비중을 늘리면 한국의 점유율이 낮아지고 중국행 수출이 줄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AI 투자 둔화와 반도체 공급 증가에 맞서 산업 경쟁력을 다지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호황으로 생긴 재원을 한계기업 정리와 산업 구조 개선에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수출이 꺾일 때를 대비해 내수 기반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산업 투자를 늘리고 서비스업 경쟁력을 높여, 반도체에 집중된 수출 성과가 오래가는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