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23일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프리IPO와 미국 증시 IPO 검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공시에서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은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 및 기업공개(IPO)에 대한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상장 준비 공개 79일 만에 중단
솔리다임의 상장 준비가 지난 8월 5일 공개된 뒤 79일 만에 검토 중단이 결정됐다. 반도체주가 최근 내리면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인공지능(AI) 투자 회의론 확산에 따른 IPO 흥행 우려가 커졌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 등을 고려할 때, 현재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솔리다임 성장 가능성이나 투자 필요성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IPO를 통해 적정한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면 현재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솔리다임의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서 새롭게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솔리다임의 출발점은 2021년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 인수다. 미국 내 생산능력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재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여러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다.
SK하이닉스는 IPO로 성장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솔리다임이 별도로 상장하면 SK㈜→SK스퀘어→SK하이닉스→AI컴퍼니→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다층 지배구조 탓에 모회사 주가의 보유자산 가치 할인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중복 상장 우려가 나왔다.
중복상장 논란과 주주 반발
중복상장 논란과 기존 주주들의 반발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중복상장 규제 방침과 경고를 내놓은 가운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 규제 대상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주들의 반발과 주가 하락도 이번 중단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중단 결정을 환영하며, SK하이닉스 이사회에 이 사안을 공식 의결하라고 요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연구원은 “시가총액 2위 기업의 중복상장 논란이 또 한 번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을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장 검토를 중단했다고 이런 의구심이 곧바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연말까지 얼마나 구체적인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는지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SK하이닉스에는 주주가치 보호와 성장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반도체 투자심리 회복 가능성
증권가는 솔리다임 상장 검토 중단이 반도체 관련 투자심리 회복에 일부 기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외국인의 SK하이닉스 매도세가 진정되고 주가의 추가 하락이 다소 제한될 가능성도 거론됐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SK하이닉스 매도세를 되돌리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상장 추진 중단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투자자들의 실망 요인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기업공개(IPO) 검토 중단 공시는 반도체에 대한 투자심리 호전에 기여할 듯하다”라고 밝혔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철회 소식은 SK하이닉스의 중복상장 관련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재료”라고 말했다. 또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수용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중복상장에 따른 할인과 지분희석에 대한 경계감은 완화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 투자자 우려와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줄어들 수 있지만 부정적 가능성도 남았다. 양 연구원은 “외부 자본 조달 기회가 줄어들고 향후 투자자금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상장 검토 중단만으로 국내 반도체주 전반의 투자심리가 곧바로 살아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 연구원들은 공급·수요 구조 같은 반도체 업황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투자심리가 퍼지는 데 한계가 있고, 글로벌 증시가 불확실한 만큼 시장 전체의 강한 상승을 이끌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주가 반등과 28일 주주환원책
지난달 23일 186만4천 원이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이후 127만 원까지 밀렸다. 이날에는 장 초반 약세를 보이다 상승 전환해 전 거래일보다 5만4000원, 4.42% 오른 127만7000원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도 장 초반 약세 뒤 후반 들어 투자 분위기가 반전됐으나 상승폭은 0.47%로 다소 제한됐다. 종가는 21만5500원이었고 코스피는 0.30% 상승 마감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상장 검토 중단에 대해 “회사 측이 구상하는 성장 전략보다는 주주가치 제고가 최우선 과제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곧 다가올 실적발표회에서 보다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제시될 것을 예상하게 한다”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실효적 주가 반등의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오는 28일 예정된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기존 예상치를 넘어서는 강화된 주주환원 방안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설명회는 오는 28일 열릴 예정이다. 김 연구원은 “28일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구체화될 주주환원책에 주목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