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승려 출신 무신 김윤후는 1232년 처인성에서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이고, 1253년에는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충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백현원에서 처인성으로
김윤후는 생몰년과 가계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고려 후기의 승려 출신 무신이다. 일찍이 승려가 되어 오늘날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있던 백현원에서 지냈다.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아곡리에 해당하는 처인성으로 피난했고, 이곳에서 활을 쏘아 몽골 장군 살리타이를 죽였다.
고려 조정은 전공을 인정해 정3품 상장군에 임명했지만, 김윤후는 이를 굳이 사양하고 종6품 섭랑장에 보임됐다. 처인성 전투가 승리로 끝난 뒤 처인부곡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됐다. 조선 후기의 안정복과 정약용은 백현원의 승려가 처인성의 승리를 계기로 무반직을 받고 환속해 김윤후라는 이름으로 대몽항쟁의 일선에 나섰다고 칭송했다.
70여 일 동안 지켜낸 충주성
1253년 고종 40년, 김윤후는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서 다시 몽골군과 맞섰다. 몽골군의 포위와 공격이 70여 일 동안 이어지면서 성안의 군량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그는 지친 군사들을 격려하며 “만약 힘을 내어 싸울 수 있다면,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관작(官爵)을 제수하려 하니 너희는 불신함이 없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김윤후는 관노의 신분 문서를 불태우고 노획한 소와 말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에 성을 지키던 군민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으며, 끝내 몽골군을 물리쳤다. 중앙 정부의 관리와 일반 민이 함께 대몽항쟁을 수행한 대표적 사례로 남은 승리였다.
전투 뒤 김윤후는 정3품 감문위 상장군이 됐다. 전공을 세운 이들에게도 신분에 따라 포상이 돌아가 관노와 백정까지 차등 있게 관작을 받았다. 충주는 이듬해인 1254년 고종 41년에 국원경으로 승격됐다.
무신으로 이어간 관직 생활
김윤후는 1258년 고종 45년에 정3품 동북면 병마사로 임명됐다. 그러나 동북면이 이미 몽골군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부임하지 못했다. 1262년 원종 3년에는 정3품 추밀원부사 예부상서가 됐고, 1263년 원종 4년에는 정2품 수사공 우복야에 오른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신분을 넘어 함께 싸운 이름
조선에서 김윤후가 자주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영조 때에는 올바른 인사 정책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의 사례가 거론됐고, 임진왜란 때 조헌이 의병을 일으킬 때에도 그의 이름이 언급됐다. 김윤후의 생애는 2012년 MBC 드라마 《무신》에서 배우 박해수가 연기하며 다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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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김윤후」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 김윤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