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박춘석, 2700여 작품과 인기 가수를 남긴 대중가요 작곡가…한국사 인물

[현대] 박춘석, 2700여 작품과 인기 가수를 남긴 대중가요 작곡가…한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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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석은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나 2010년 3월 14일 자택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난 대중가요 작곡가다. 1955년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 등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데뷔한 뒤 약 40년 동안 「비 내리는 호남선」·「섬마을 선생님」 등 2700여 작품을 발표하고 여러 인기 가수를 배출했다.

피아노에서 시작된 음악 인생

박춘석은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박의병이고 호는 백호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서울봉래초등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했으며, 이후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했고, 현재 확인되는 초기 활동으로는 1949년 서울스윙킹밴드 참여가 있다. 1950년대에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재즈 보급에 기여했으며,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악단을 이끄는 밴드마스터로도 활동했다.

황혼의 엘레지와 비 내리는 호남선

박춘석은 1955년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 등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정식 데뷔했다. 그는 작곡에만 머물지 않고 백호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곡에 직접 가사를 붙이며 작사 활동도 병행했다.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힌 작품은 1956년에 발표한 「비 내리는 호남선」이다.

이후 오아시스레코드·지구레코드·대도레코드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했다. 외국 대중음악을 편곡하는 능력도 갖춰 번안곡 「검은 상처의 블루스」를 히트시켰다. 약 40년 동안 작품을 발표했으며, 작곡한 작품은 「마포종점」「초우」를 포함해 2700여 개에 이른다.

섬마을 선생님과 박춘석 사단

1966년 박춘석은 10년가량 몸담았던 오아시스레코드를 떠나 지구레코드로 옮겼다. 이 무렵 이미자·남진·문주란·하춘화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박춘석 사단’이 형성됐으며, 그는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재즈 피아노로 출발한 그의 음악 영역은 「섬마을 선생님」「가슴 아프게」 같은 트로트까지 크게 넓어졌다.

박춘석은 이미자의 노래를 많이 작곡했으며, 특히 「한번 준 마음인데」「섬마을 선생님」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미자뿐 아니라 패티김과 남진 등 스타 가수를 양성했으며,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그의 음악이 지닌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도 이름을 알렸고,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부를 곡을 제공하기도 했다.

제작과 음악계 활동

박춘석은 1980년대 이후 태양음향과 거성레코드를 직접 설립해 운영하며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1987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으로 선출됐고, 1990년에는 세계 법보사 회장을 맡았다. 1992년에는 통일국민당 창당 발기인과 문화예술행정특임고문으로 참여했으며, 1996년에는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고문으로 잠시 활동했다.

그는 KBS 가요대상과 KBS 가요·가사·음반기획상, KBS 가요대상 작곡상, MBC 10대가요제 특별상,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등을 받았다. 1995년에는 옥관문화훈장 4등급을 받았다.

투병과 남겨진 평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박춘석은 1990년대에도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으나, 1994년 뇌졸중이 발병한 뒤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투병했다. 2001년 무렵에는 서울중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으며, 동생 박금석의 보살핌을 받았다. 2010년 3월 14일 자택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 3월 18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묻혔다. 사후에는 은관문화훈장 2등급이 추서됐다.

박춘석은 재즈 피아니스트와 밴드마스터로 출발해 작사·작곡·편곡·음반 제작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고, 약 40년에 걸쳐 수많은 인기곡과 가수를 배출했다. 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성에서 당대의 다른 대중가요 작곡가보다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으며, 「비 내리는 호남선」·「섬마을 선생님」·「가슴 아프게」·「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서로 다른 빛깔의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기억되는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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