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삼연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뒤 호남창의맹소 대장으로 추대돼 호남 의병을 이끈 의병장이다.
장성의 유교 가문에서 자란 성재 기삼연
기삼연은 1851년 1월 18일 전라남도 장성 소곡리 탁곡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경로, 호는 성재다. 전통적인 유교 가문에서 성장한 그는 집안 어른이자 성리학자인 노사 기정진에게 글을 배웠다. 이 가문에서는 기삼연 외에도 여러 의병장이 나왔다.
기삼연의 부인은 금성오씨 긍수의 딸이며, 딸 익선을 두었다. 둘째 부인은 밀양박씨 동연의 딸로 정혜공 수량의 후손이며, 아들 우현과 울산 김면수의 부인이 된 딸을 두었다. 셋째 부인에게서는 아들 우생과 옥천 조면식의 부인이 된 딸, 울산 김홍중의 부인이 된 딸을 두었다.
을미사변 뒤 시작한 첫 거병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된 뒤 기삼연은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았다. 장성에서 나주로 나아가 병력을 규합한 이들은 광산에서 거병하려 했다.
정부는 선유사 신기선과 이겸제를 보내 왕명을 전하고 의병 해산을 설득했다. 이에 첫 거병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삼연은 그 명령이 고종의 본뜻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다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일진회 회원의 밀고로 드러났다. 그는 관찰사 조한국이 파견한 전주진위대의 김한정에게 붙잡혀 전주옥에 갇혔고, 이어 서울 평리원옥으로 옮겨졌다. 체포된 날은 딸의 혼례일이었다. 한 달 남짓 수감된 그는 평리원장 이용태의 도움으로 탈출한 뒤 몸을 숨겼다.
호남창의맹소 결성과 연승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각지에서 의병투쟁이 다시 일어났다. 기삼연은 같은 해 9월 수록산 석수승암에서 의병들과 회맹하고 호남창의맹소 대장으로 추대됐다.
9월 23일 기삼연의 부대는 고창 문수암으로 진군하던 중 접근하는 병력과 싸워 큰 전과를 거뒀다. 고창의 관리와 주민들은 군기와 군량을 마련해 의병에게 공급했다. 호남창의맹소는 고창에 이어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했고, 12월에는 광주의 관리 최상진 등의 내응을 얻어 세력을 확대했다.
군량을 확보하기 위한 법성포 작전도 전개했다. 12월 7일 의병 100명이 법성포 순사주재소를 기습해 불태우고 창고의 곡식을 확보했다. 이들은 곡식 가운데 군자금과 군량에 필요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이후 전세가 달라지자 부대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유격전에 들어갔다. 김준이 지휘한 의병부대는 무동촌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겨울 추위로 의병들이 흩어지자 기삼연은 각지의 부대에 연락해 동짓날 장성을 공격하려 했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는 서우산에서 잠시 병력을 쉬게 한 뒤 고막원을 다시 공격하려 했으나 이동 중 철수했다.
추월산성 탈출과 마지막
기삼연은 12월 27일 의병부대를 이끌고 설을 쇠기 위해 험준한 담양 추월산성으로 들어갔다. 밤에 큰비가 내렸고, 노숙하던 병사들은 추위에 시달렸다. 수비가 느슨해진 틈에 포위 공격이 시작됐으며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삼연은 갑자기 안개가 덮인 사이 포위망을 벗어났다.
탈출한 그는 순창 복흥 산중에 있던 재종제 기구연의 집에서 부상을 치료했다. 장졸들에게 설을 보낸 뒤 정월 보름에 다시 모이라고 지시한 그는 구수동의 민가에 숨어 있었다. 정월 초하룻날 수십 명이 들이닥쳐 집주인에게 총검을 겨누자 기삼연은 스스로 붙잡혔다. 소식을 들은 김준은 창평에서 적을 물리친 뒤 의병 30명을 이끌고 경양에 도착했지만, 기삼연은 이미 경찰서에 수감된 상태였다.
기삼연은 1908년 음력 1월 2일인 2월 3일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됐다. 사형을 앞두고 그는 “출사하여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일찍이 해를 삼킨 꿈은 또한 헛것인가”라는 뜻의 한시를 남겼다.
이어진 호남 의병과 추모
기삼연이 순국한 뒤 호남 의병은 김준·이석용·김용구 등이 이끄는 부대로 재편돼 항일전을 계속했다. 김준이 순국한 다음에는 조경환 등이 그 투쟁을 이어갔다.
1966년에는 장성군 장성읍에 순국비가 세워졌다. 기삼연은 군대 해산 뒤 호남의 의병을 결집해 여러 지역에서 항일전을 지휘하고, 법성포 작전과 유격전으로 투쟁을 이어간 의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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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기삼연」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 기삼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