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38년 만의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하면서 대통령 권한 분산과 책임정치 구현을 위한 개헌을 사실상 1호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국회에서는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고 실질적인 행정 책임을 지도록 하는 책임총리제 도입이 권력구조 개편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 개헌 명시…4년 연임제·감사원 이관 담아
정부가 9월 16일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 방안이 담겼다. 국정과제는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심의 외교안보 등 5대 국정목표와 23대 추진전략, 123대 세부과제로 구성됐다.
개헌 관련 세부 내용으로는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하는 방안,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제한하는 방안,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 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향후 로드맵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마련하면 정부가 의견을 제출하고, 논의 진행 경과에 따라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에서 개헌 찬반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회 개헌자문위원회는 앞서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하고 국회에 총리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임기 후반 권력 누수와 권한 집중 문제를 반복적으로 노출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책임총리제가 도입되면 국회가 추천한 총리가 내각 구성과 국정 운영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게 되며, 국회는 총리에 대한 불신임권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게 된다.
연임제 개헌, 현직 대통령엔 적용 안 돼…국회 답변으로 확인
4년 연임제 개헌 논의는 현직인 이재명 대통령 본인에게 적용되는지를 둘러싼 국회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9월 1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은 개헌 후 도입될 4년 연임제 적용을 받지 않는 게 맞느냐”고 묻자 “일반적 헌법 원리상 그렇게 된다는 것은 다 아실 것”이라고 답했다. 김 총리는 이어 “현행 헌법 부칙에 임기를 연장하는 개정이 이뤄질 경우 해당 시기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며 “이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설명했다.
권력구조 개편 방식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도 여전히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책임총리제를 이원집정부제 또는 준대통령제로 부르며 프랑스식 정부 형태를 참고 모델로 거론하고 있다. 반면 야당 일부에서는 총리 실권화를 넘어 순수 의원내각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구체적인 권력구조 설계를 둘러싼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38년간 네 차례 무산된 개헌…이번엔 다를까
헌법 개정이 정치권의 의제로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개헌 논의가 처음 본격화한 이후,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 발의,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2025년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정국에 이르기까지 개헌은 총 네 차례에 걸쳐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안을 토대로 대통령 단독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했으나, 여야 협상 결렬로 야당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된 바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 4월 6일 당시 예정된 조기 대통령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각 정당에 제안하며 국민투표법 개정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함께 요구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에서 개헌 논의보다 정국 수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개헌 방향이 국회 권한을 축소하는 쪽이어서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우 의장은 사흘 뒤인 4월 9일 해당 제안을 철회했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 찬성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성립된다. 여야가 그때그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며 개헌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해왔다는 지적이 반복돼 온 만큼, 이번 논의가 실제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은 과제…국회 개헌특위 구성과 국민 참여가 관건
전문가들은 개헌이 성공하려면 여야가 참여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 기간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제시한 로드맵대로 국회 차원의 개헌안 마련이 이뤄지고,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 국민투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여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8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책임총리제 도입, 감사원의 국회 이관 등 정부가 제시한 개헌 의제들이 실제 국회 논의를 거쳐 국민투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정치권의 행보가 주목된다. 과거 네 차례의 개헌 시도가 모두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됐던 만큼, 이번 논의에서는 정략적 접근이 아닌 초당적 합의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