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과 다른 재난, 사라진 마을
지난 4일 네팔 바그마티주 랄리트푸르에서 20년 넘게 구호 활동을 해온 문광진 씨는 이번 대홍수의 복구 기간을 “예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홍수는 주택과 기반시설만 파손한 것이 아니라 일부 마을의 생활 터전 자체를 휩쓸었다. 문씨는 2015년 규모 7.8 강진 당시 구호가 거의 마무리되기까지 약 3년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피해 지역의 형태가 달라 종료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지를 취재한 연합뉴스 보도를 종합하면 2015년 강진 때는 약 8천900명이 숨지고 주택을 포함한 건물 약 100만채가 파손됐다. 복구 비용은 90억달러로 추산됐고, 40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1년 이상 천막이나 임시 건물에서 생활했다. 교실을 잃은 학생도 약 100만명에 달했다. 당시에도 국가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었지만, 건물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무너진 강진과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이번 홍수는 복구의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이 문씨의 판단이다.
대피에만 나흘, 지형이 만든 고립
현재 구호 활동은 바그마티주 누와코트 지역의 비두르와 트리슐리 바자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비두르는 실종자 수색용 헬기가 매일 이륙하는 트리슐리 군사기지 인근에 있으며, 트리슐리 바자르는 비두르에서 트리슐리강 상류 방향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상권이 발달한 트리슐리 바자르 주변에는 살아남아 내려온 이재민이 몰리면서 학교와 교회 등에 임시 대피소가 마련됐다.
문씨의 설명에 따르면 홍수는 트리슐리강 상류에서 하류로 거세게 밀려 내려왔고, 강 동쪽 지역에서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많이 발생했다. 서쪽의 트리슐리 바자르에는 상대적으로 생존자가 많았다. 둔체 등 상류 지역을 빠져나온 주민들은 산길을 따라 50∼60㎞를 걸었으며, 대피에 최소 이틀에서 나흘이 걸렸다. 이는 구조 거점과 피해 마을 사이의 거리가 단순한 지도상의 숫자가 아니라 생존 가능성과 구호품 전달 속도를 좌우하는 장벽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홍수 뒤의 구호는 생존자를 한곳으로 옮기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피한 주민들이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남겨진 가족이나 실종자가 있는지, 다시 돌아갈 터전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산길을 며칠씩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피해 규모를 조사하는 작업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실종자 수색을 위해 헬기가 매일 운항한다는 사실도 도로를 통한 접근과 현장 확인이 그만큼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생존 이후 시작된 장기 구호
재난을 피해 살아남은 주민들은 즉시 또 다른 위기에 놓였다. 집과 마을을 떠날 때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만큼, 임시 대피소 생활이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문씨는 트리슐리 바자르 주변에 구호가 필요한 이재민이 많다고 전했다. 학교와 교회가 피난 공간으로 전환된 것은 긴급한 보호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피가 장기화하면 원래 시설이 담당하던 교육과 지역 공동체 기능도 함께 제약받을 수 있다고 분석된다.
피해가 심한 지역의 인명 상황은 아직 현장 증언을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씨는 람체와 둔체 인근에서 하류로 대피한 주민이 많았으며, 150가구가 살던 한 마을에서 25가구 주민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숨지거나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공식적으로 확정된 전체 통계가 아니라 현장에서 접한 증언이지만, 공동체 단위의 피해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시에 접근이 어려운 마을의 생존자와 실종자 규모를 확인하는 일이 구호의 첫 단계로 남아 있음을 뜻한다.
이번 재난의 복구가 장기화할 가능성은 2015년 강진과의 비교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당시에는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에도 무너진 건물의 위치와 기존 마을의 경계를 토대로 복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 홍수로 거주지가 사라졌다면 주민의 귀환, 주택 재건, 교육 재개, 지역 상권 회복을 어느 장소에서 추진할지부터 다시 판단해야 한다. 복구 기간을 예상할 수 없다는 문씨의 말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피해 지도를 완성하기조차 어려운 현장의 불확실성을 압축한다.
숫자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복구의 조건
지금 네팔 구호의 핵심은 과거 재난의 규모를 그대로 대입해 일정을 계산하는 데 있지 않다. 2015년 강진은 약 3년에 걸친 구호 경험과 90억달러로 추산된 복구 비용이라는 비교 기준을 남겼지만, 이번 홍수는 피해 양상이 전혀 다르다. 산길을 따라 이동한 생존자, 접근이 끊긴 상류 마을, 하류 임시 대피소, 계속되는 실종자 수색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비로소 필요한 인력과 물자의 범위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임시 대피소에 도착한 사람만을 기준으로 피해를 계산하면 고립 지역의 상황이 뒤늦게 반영될 수 있다. 생존자가 많은 곳에 식량과 생활 물품을 공급하는 일과 접근하기 어려운 마을에서 실종자를 찾는 일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구호 역량이 눈에 보이는 대피소에 집중되는 동안 산간 지역의 정보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재난에서는 속도뿐 아니라 피해 지역을 빠짐없이 파악하는 정확성이 장기 복구의 성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네팔 대홍수는 재난의 심각성이 사망자나 파손 건물 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위치와 이동 경로까지 사라지면 구조, 조사, 주거 재건, 교육 정상화가 연쇄적으로 늦어진다. 세계의 독자들이 이 사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번 네팔의 상황은 대규모 자연재난 이후 국제 구호가 물품 전달을 넘어 사라진 생활권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지 묻는 장기적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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