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금 한국인 노동자 석방, 한미 외교의 새로운 전환점

미국 구금 한국인 노동자 석방, 한미 외교의 새로운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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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지난 9월 4일 미국 이민당국의 대규모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지난 12일 전세기 편으로 귀국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국토안보부 산하 기관이 단일 현장에서 벌인 역대 최대 규모의 단속으로 기록됐으며, 현지에서 체포된 인원은 한국인을 포함해 총 475명에 달했다. 구금과 석방, 귀국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확대되고 있는 한미 양국의 인력 교류가 비자 제도의 한계와 충돌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단속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강화된 불법 체류 및 불법 노동 단속 기조 속에서 벌어졌다. 국토안보부는 이번 단속이 단일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역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으며, 현장에서는 무장 요원들이 투입돼 공장 부지를 봉쇄한 채 신원 확인과 체포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금된 인원 대부분은 현지 협력업체 소속으로 배터리 생산라인의 설비 설치와 시운전 등 단기 기술 지원 업무를 맡고 있었다.

수갑 채워진 채 구금된 노동자들

구금된 한국인 노동자 상당수는 상용 방문에 쓰이는 B-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로 입국해 현장에서 설비 설치와 시운전 등을 담당하던 인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체포 과정에서 수갑과 쇠사슬이 채워진 채 이송됐고, 일부는 이 조치가 적법한 비자 소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귀국한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은 언론 인터뷰에서 범죄자 취급을 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손과 발에 채워진 수갑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사태 수습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직접 방문해 구금자 석방과 귀국 문제를 미국 국무부, 국토안보부 등과 협의했다. 정부 간 협의 결과 노동자들을 태울 전세기가 투입됐으며, 관련 비용은 정부 예산이 아닌 LG에너지솔루션이 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별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귀국한 노동자들이 향후 전자여행허가나 비자를 다시 신청할 때 이번 구금 이력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첨단산업 인력 이동과 비자 제도의 간극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지아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며 현지 고용 창출과 기술 이전에 나서고 있으나, 설비 반입과 시운전 등 초기 단계에서는 본사 소속 기술 인력이 단기간 파견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인력 상당수가 정식 취업비자가 아닌 상용 방문 비자나 무비자 입국 제도를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 이민당국이 이를 불법 노동으로 간주해 단속에 나서면서, 합법적 투자와 현장의 관행 사이에 존재하던 회색지대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첨단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파견하는 기술 인력의 체류 자격 문제를 근본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미국 측과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나 별도 비자 신설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 연방 하원에는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인 E-4 비자를 연간 최대 1만5천 명 규모로 신설하는 내용의 이른바 ‘파트너 위드 코리아 법안’이 이미 발의돼 있으나, 2013년 이후 여러 차례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아직 처리되지 못한 상태다. 이번 구금 사태를 계기로 이 법안 처리에 다시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세 및 통상 협상과도 맞물려 있는 사안으로, 정부는 통상 협상 과정에서 시간에 쫓겨 국익을 해치는 합의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협력적 태도가 향후 협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때 파견 인력의 체류 자격과 법적 리스크를 사전에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교훈도 남겼다. 국회 안팎에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비자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한미 양국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협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비자 제도 정비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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