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나든 독립운동가, 오늘 다시 이름을 얻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광주 고려인마을은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일곱 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김정하 선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정하 선생은 1897년 태어나 1938년 생을 마칠 때까지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를 오가며 무장투쟁과 정보 수집, 청년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이번 선정은 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명단에 추가하는 절차를 넘어선다. 김정하 선생의 활동 무대가 한 지역이나 한 국가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국경을 넘나들며 이어진 한국 독립운동의 복합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국가 경계만으로 그의 행적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김정하 선생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성범이라는 이름 등을 사용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은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확인하고 후손을 찾는 작업이 왜 세심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지를 드러낸다. 이름이 달라지면 기록도 흩어질 수 있고, 흩어진 기록은 한 인물의 삶을 서로 다른 조각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해주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진 활동 반경
김정하 선생의 삶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넓은 활동 범위다. 그는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를 넘나들었다. 이 지명들은 김정하 선생의 독립운동이 한곳에 정착한 형태가 아니라 여러 공간을 연결하며 전개됐음을 보여주는 핵심 단서다.
그가 수행한 역할도 하나로 압축되지 않는다. 무장투쟁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정보를 모으고 청년을 교육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직접적인 투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 활동,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교육이 한 인물의 생애 안에 함께 존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독립운동을 단순히 무기를 든 장면만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정보 수집은 판단과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청년교육은 활동의 경험과 목표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된다. 김정하 선생의 행적은 독립운동이 현장의 투쟁과 지식의 축적, 사람의 성장을 함께 필요로 했던 종합적인 실천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러 이름에 가려졌던 한 사람의 생애
김정하 선생은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삶을 따라가려면 출생지와 본명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그는 이성범 등의 이름을 사용했고, 그 배경에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야 했던 현실이 있었다.
가명은 당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물을 확인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같은 사람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면 각각의 자료가 실제로 한 인물을 가리키는지 연결해야 한다. 이번 사업에서 ‘발굴’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도 기록 속 단서를 모아 인물과 후손의 연결 가능성을 다시 살피는 데 있다.
김정하와 이성범이라는 이름을 함께 제시하는 일은 단순한 표기 보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가명 뒤에 가려졌던 삶을 하나의 서사로 복원하고, 독립운동가가 감시를 피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활동을 이어갔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름의 복원은 곧 활동의 복원이며, 활동의 복원은 역사 속 개인을 다시 사회의 기억으로 불러내는 과정이라고 평가된다.
무장투쟁·정보 수집·청년교육이 만나는 지점
김정하 선생을 설명하는 세 가지 핵심어는 무장투쟁, 정보 수집, 청년교육이다. 각각의 활동은 성격이 다르지만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연결된다. 무장투쟁이 직접 행동의 영역이라면 정보 수집은 현실을 읽고 움직임을 설계하는 영역이며, 청년교육은 사람과 경험을 이어가는 영역이다.
이 가운데 청년교육은 김정하 선생의 활동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교육은 당장의 성과만을 겨냥하기보다 사람을 길러내고 생각을 전하는 과정이다. 그가 여러 지역을 오가는 상황에서도 청년을 교육하는 데 헌신했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사람에게서 찾았던 행보로 분석된다.
정보 수집 역시 그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자료에는 구체적인 정보의 내용이나 수집 방식이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확대해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무장투쟁과 정보 활동이 함께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정하 선생이 단일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스물일곱 번째 선정이 보여주는 기억의 방식
광주 고려인마을과 고려신문이 공동 추진하는 사업은 김정하 선생을 스물일곱 번째 인물로 선정했다. 숫자 자체는 이 작업이 단발성 조명이 아니라 인물을 차례로 찾아 소개하는 연속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한 명씩 이름과 생애를 확인하는 방식은 거대한 역사를 개인의 구체적인 삶으로 접근하게 한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후손 발굴과 지원을 사업의 이름에 함께 담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억을 과거의 기록에만 가두지 않고, 그 삶과 연결된 후손의 존재까지 살피려는 방향을 나타낸다.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사실은 한국 광주와 러시아 모스크바를 잇는 협력 구조가 이 사업의 토대임을 보여준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김정하 선생을 이번 사업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으며, 그 결과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를 오간 그의 행적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생전에 여러 지역을 이동했던 독립운동가를 오늘날 서로 다른 지역의 기관과 매체가 함께 조명한다는 점에서, 사업의 방식과 김정하 선생의 삶은 공간을 넘어 연결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탄압으로 끝난 생애, 복원으로 이어지는 기억
김정하 선생의 생애는 스탈린 정권의 탄압 속에서 끝났다. 자료는 그가 1938년 생을 마감했다고 전한다. 독립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또 다른 권력의 탄압을 피해 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겹쳐 있던 역사적 압박을 보여준다.
그의 생애를 오늘 다시 조명하는 일은 비극적인 결말만을 되풀이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무장투쟁과 정보 수집, 청년교육이라는 구체적인 활동을 함께 살펴야 김정하 선생이 무엇을 했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시대를 통과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탄압으로 생이 끝났더라도 그가 남긴 활동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번 선정으로 다시 드러난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할 때 출생과 사망 연도만 남기면 삶의 내용은 쉽게 희미해진다. 반대로 이동한 지역, 사용한 이름, 수행한 역할을 연결하면 한 사람의 선택과 행동이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김정하 선생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1897년부터 1938년까지의 시간을 숫자로만 제시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활동을 다시 읽게 한다.
한국 사회가 역사적 인물을 현재로 불러오는 법
이번 소식의 중심에는 새로운 기념시설이나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선정’과 ‘발굴’이 있다. 눈에 띄는 행사를 앞세우기보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이름과 활동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이는 역사 기억이 거창한 선언뿐 아니라 자료를 확인하고 이름을 연결하는 꾸준한 작업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정하 선생의 사례는 한국 독립운동의 기억이 한국 영토 안의 장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환기한다. 그의 활동 지역으로 제시된 연해주,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이어진다. 따라서 그를 이해하는 과정은 여러 지역에 흩어진 흔적을 하나의 삶으로 바라보는 과정이 된다.
동시에 이번 재조명은 독립운동가를 영웅적 이미지 하나로 단순화하지 않도록 한다. 감시를 피해 다른 이름을 사용한 개인, 여러 지역을 이동한 활동가, 무장투쟁과 정보 수집에 참여한 실천가, 청년을 가르친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함께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할을 나누어 살펴볼수록 김정하 선생의 삶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깊이를 갖게 된다.
세계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흩어진 기억의 연결’
김정하 선생의 이야기는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속하지만, 그 활동 무대는 여러 지역에 걸쳐 있다. 출생지는 함경남도 이원이었고, 활동은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로 이어졌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이 여러 공간에 남아 있다는 점은 역사적 기억을 국경 하나의 틀로만 해석하기 어렵게 한다.
광주 고려인마을과 모스크바의 고려신문이 함께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구조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과거에 흩어진 활동의 흔적을 오늘의 협력으로 연결하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남은 한 인물의 생애를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록과 공동체가 함께 움직일 때 잊힌 개인의 역사가 다시 사회적 의미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22일 전해진 김정하 선생의 선정 소식이 세계 독자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하다.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통해 한국의 역사가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흩어진 이름과 기억을 오늘의 공동체가 다시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처
· '여자친구 살해' 40대 외국인 항소 기각…징역 14년 유지 (연합뉴스)
· [동포의 창] '고려혁명군 사령관' 김정하 선생을 아십니까 (연합뉴스)
· 검찰 "최영중 통신영장 반려는 적법…요건 갖추면 청구 검토"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