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운동가 김정하 선생 27번째 발굴 인물로 선정

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운동가 김정하 선생 27번째 발굴 인물로 선정

광주 고려인마을은 22일 고려신문과 추진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사업의 27번째 인물로 김정하 선생을 선정했다. 김 선생은 연해주·만주·상하이·모스크바에서 무장투쟁과 정보 수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스물일곱 번째 인물로 독립운동가 김정하(金鼎夏·1897∼1938) 선생을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선생은 연해주와 만주, 상하이, 모스크바를 넘나들며 무장투쟁과 정보 수집, 청년교육에 헌신하다 스탈린 정권의 탄압으로 생을 마감했다.

폭탄 6개를 청진으로 들여왔다

선생은 함경남도 이원 출신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고 이성범(李成範) 등 여러 이름을 쓰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국가보훈부 공훈록을 보면 그는 1920년 9월 폭탄 6개를 연해주에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들여왔다. 그해 11월부터는 일본군과 친일 세력의 동향을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했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채 모집에도 참여했다.

고려혁명군 제3대 사령관을 지냈다

1923년에는 상하이 국민대표회의에서 활동했다. 이후 맡은 자리는 고려혁명군 제3대 사령관과 단지동맹암살대 대장, 대한통의부 군정위원이었다.

폭탄 반입과 정보 수집, 무장투쟁, 조직 운영, 청년교육이 한 사람의 이력 안에 겹쳐 있는 셈이다.

1938년 1월 18일 총살됐다

1937년 소련이 고려인을 강제이주시키고 대숙청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는 체포됐다. 이듬해 1월 18일 총살당했다.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해 그의 공훈을 기렸다. 묘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직계 후손이 누구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스물일곱 번째 발굴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 선생은 폭탄 반입과 정보 수집, 무장투쟁, 조직 운영, 청년교육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여러 분야에서 헌신한 지도자”라며 “고려신문과 협력해 잊힌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후손을 지속해서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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