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올해 5월 발생한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을 계기로 지하철 안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마련된 불연재 소재와 대피 체계가 대형 참사를 막아냈지만, 사건 당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만큼 보다 근본적인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사건은 지난 5월 31일 오전 8시 43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 한강 하저 구간을 통과하던 전동차 안에서 발생했다. 당시 60대 남성 원모씨가 토치와 기름통을 이용해 방화를 시도했고, 열차에는 약 400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연기를 흡입한 2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129명이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며, 재산 피해는 3억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수사기관은 원씨를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원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량이 유지됐다.
AI 기반 안전 시스템 확대
서울교통공사는 올해를 인공지능 전환 실행 원년으로 선포하고 고객 편의와 안전 관리, 업무 혁신 등 세 개 분야에서 스물여덟 개의 인공지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안전 관리 분야에서는 전동차 내 센서와 CCTV 영상을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관제센터에 즉시 경보를 전송하고 관련 영상을 자동으로 띄우는 방식으로 감시 체계를 고도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1호선부터 8호선까지 190개 역에 이백만 화소 이상의 고해상도 CCTV와 사물인터넷 센서, 3차원 지도를 결합한 스마트스테이션을 운영 중이다. 딥러닝 기반 영상분석 기술로 승강장 선로 무단진입이나 에스컬레이터 낙상 같은 이상 징후를 자동으로 인식해 관제 화면에 경보와 영상을 동시에 띄우고, 화재 발생 시에는 디지털트윈 지도를 통해 해당 위치의 CCTV 영상과 표준 대응 절차를 함께 제공해 초기 대응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7호선은 올해 8월까지 이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며, 6호선은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승무원 대응 체계 정비와 남은 과제
서울교통공사는 승무원의 비상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 체계도 정비하고 있다. 5호선 방화 사건 당시 기관사가 열차를 즉시 정차시키고 문을 개방해 승객 대피를 유도한 초기 대응이 피해 확산을 막은 요인으로 꼽히면서, 이러한 대응 절차를 표준화하고 반복 훈련을 통해 숙달시키는 방향으로 매뉴얼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터널 내 화재나 열차 정차 상황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전교통공사 등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에서는 실제 상황을 가정한 화재 대응 훈련이 실시됐으며,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들이 훈련 현장을 참관하며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 개선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전국 전동차에 불연재와 극난연재 소재가 전면 적용되고 스프링클러와 제연 설비 등 하드웨어적 안전장치가 갖춰지면서 한국의 도시철도 안전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방화 사건은 하드웨어적 안전장치만으로는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기반 감지 체계와 같은 기술적 보완과 함께 승무원의 현장 대응 능력, 승객들의 안전 의식이 함께 갖춰져야 실질적인 안전망이 완성된다고 지적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추진 중인 스마트스테이션 확대와 인공지능 이상 상황 감지 체계가 다른 지역 도시철도 운영기관으로 얼마나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지가 향후 지켜봐야 할 지점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