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M4 조기 양산으로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강화

SK하이닉스, HBM4 조기 양산으로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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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차세대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의 양산 일정을 앞당기며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의 출시 일정에 맞춰 HBM4 공급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면서, SK하이닉스는 당초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양산 체제 구축에 나섰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이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계기로 평가된다.

2025년 9월 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달 중 HBM 패키징 장비 관련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HBM4 12단 제품의 대량 양산을 위한 설비 투자에 나선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의 샘플 출하 일정에 맞춰 HBM4 공급을 당초보다 앞당겨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SK하이닉스는 이에 앞서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 제품은 초당 2테라바이트(TB) 이상의 데이터 처리 대역폭을 구현해 전세대 제품인 HBM3E 대비 60% 이상 향상된 성능을 갖췄다. 풀HD(Full-HD)급 영화 40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용량 면에서는 12단 기준 최고 수준인 36기가바이트(GB)를 구현했으며, 앞선 세대에서 안정성이 검증된 어드밴스드 MR-MUF 공정을 적용해 칩의 휨 현상을 제어하고 방열 성능을 높였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고대역폭메모리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고성능 메모리 제품으로, 인공지능 연산을 담당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함께 탑재돼 대규모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들이 GPU 성능을 끌어올릴수록 이를 뒷받침할 고성능 메모리 수요도 함께 커지는 구조여서, HBM 공급 기업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AI 반도체 산업 전체의 성장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에 공급 일정 조정을 요청한 배경에는 HBM 공급망에서 이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과 신뢰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HBM 시장 확대와 SK하이닉스의 입지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5년 글로벌 HBM 시장 규모가 전년 182억달러 대비 크게 늘어난 467억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으며,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도 20%대에서 30%대 중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SK하이닉스의 위상 변화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5년 1분기 매출 기준 점유율 36%를 기록하며 삼성전자(34%)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다. 33년간 세계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가 AI·고성능컴퓨팅(HPC) 시장 대응에서 밀리며 순위가 뒤바뀐 것으로, HBM 시장에서의 기술적 우위가 D램 시장 전체의 지형 변화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HBM 사업 확대가 회사 전체 실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매출 비중 전망치가 공식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HBM이 SK하이닉스 실적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생태계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SK하이닉스의 HBM4 조기 양산 움직임은 개별 기업의 실적을 넘어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될 HBM 패키징 장비 투자는 후공정 분야의 국내 장비·소재 업체들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에 따른 메모리 업황 개선이 이어질 경우 관련 협력업체들의 동반 성장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차세대 가속기의 공급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한국 기업에 조기 양산을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의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이 그만큼 높게 평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과 세제 지원 등을 통해 첨단 메모리 분야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도 HBM4 개발과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어 우위를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엔비디아에 HBM4 샘플을 공급하고 내년 초 성능 검증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마이크론 역시 12단 HBM4 샘플을 고객사에 전달했으나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HBM4 12단 제품의 하반기 양산 준비를 마무리하고 고객사 인증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지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HBM4 양산 경쟁이 본격화하는 하반기 이후 SK하이닉스와 경쟁사들의 실제 공급 실적과 수율이 시장 판도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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