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최형섭, 한국 과학기술 연구 체제의 기틀…한국사 인물

[현대] 최형섭, 한국 과학기술 연구 체제의 기틀…한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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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출발한 금속공학자의 길

최형섭은 1920년 11월 2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주, 호는 송곡이다. 어린 시절 밀양·경주·전주·해주에서 잠시 생활했고, 1926년 진주로 돌아온 뒤 그곳에서 성장했다. 1936년 대전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채광야금과에서 공부해 1944년 공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경성대학 이공학부 전임강사로 1946년부터 1947년까지 근무했고, 1947년부터 1948년까지 해사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48년에는 국산자동차주식회사 기술고문을 맡았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장극 공학박사와 함께 대한민국 공군 장교로 참전했다. 1950년 10월 10일 공군 대위로 임관한 뒤 공군본부 항공부대 정훈장교와 공군항공수리창장을 지냈으며, 1952년 11월 20일 소령으로 진급하고 1953년 12월 3일 예편했다.

공군항공수리창장으로 재직하던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55년 노트르담대학원에서 물리야금 전공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네소타대학원에서 화학야금을 전공해 1958년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과정도 마쳤다. 1959년 귀국한 그는 국산자동차주식회사 부사장을 거쳐 상공부 광무국장을 지냈고, 1962년 4월부터 1966년 2월까지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기틀

1966년 한국 최초의 종합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설립되자 최형섭은 초대 소장에 임명됐다. 그는 1966년 2월부터 1971년 6월까지 연구소를 이끌며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일하고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가며 필요한 환경을 갖추는 운영 방향을 세웠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수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을 영입하고 효율적인 연구 여건을 마련해 연구소가 짧은 기간에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었다.

연구소 운영에는 계약연구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이 필요한 연구를 맡기고 연구자는 책임 있게 과제를 수행하도록 구성한 공업기술 연구 체제였다. 기업이 위탁한 연구비 전액에는 면세 조치가 적용돼 기업의 참여를 끌어냈다. 이 계약연구제도는 개발도상국들이 기술을 개발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혔다. 최형섭 자신도 금속공학의 기초연구부터 응용연구와 개발연구까지 폭넓게 수행했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장 재임 중 경제과학심의회 위원과 국무회의 과학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명예연구위원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과학기술 행정과 대덕연구단지

장관으로서 연구소와 교육기관이 함께 자리하는 대덕연구 학원도시 건설을 계획하고 추진했다. 이 시기 과학기술처 안에 정보산업국이 신설돼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과학기술 연구 기반이 강화됐다.

한국과학재단 설립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1977년 5월부터 1980년 8월까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요청하는 연구개발 과제를 기초연구에서 응용연구와 개발연구까지 이어서 수행하는 체제가 정립됐다. 1976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됐고, 1980년 5월부터 같은 해 8월까지 한국과학원 원장을 지냈다. 이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 고문을 맡았으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개발도상국으로 확장된 과학기술 구상

최형섭은 개발도상국이 공업화와 국가 발전을 이루려면 과학기술 개발이 가장 필요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1980년 일선 업무에서 물러난 뒤에는 유엔 여러 기관의 의뢰로 다수 개발도상국이 과학기술 정책과 계획을 짜는 데 자문 역할을 했다. 여러 국제회의에 초청돼 기조연설자로 나서거나 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1988년 유엔과학기술개발자문회의 위원으로 선출돼 1992년 4월까지 활동했으며, 연평균 5회 이상 개발도상국을 방문했다. 이러한 경험과 구상을 저서 『개발도상국의 공업연구』와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개발전략』 1∼3부에 담았다. 199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외국회원에 선출됐다.

과학기술 제도를 남긴 행정가

최형섭은 1994년 5·16민족상을 받았고, 1996년 한국공학한림원 대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대통령상 발명상, 제1회 한국공학기술상 대상, 프랑스 국가공로훈장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일본경제신문사의 닛케이 아시아 국제대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2003년 국립서울과학관은 그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과학위인으로 등록했다. 최형섭은 2004년 5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금속공학 연구에 머물지 않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운영 원칙과 계약연구제도, 대덕연구단지 건설, 한국과학재단의 연구개발 체제를 마련했으며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정책 수립까지 도운 과학자이자 관료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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