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출발한 한국 컨테이너선, 북극항로 실증에 나서다
한국 해운업이 북극항로의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증 운항에 들어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에 거점을 둔 국내 선사 팬스타라인닷컴의 2천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22일 오후 부산을 출항했다. 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를 나타내는 해운 물동량 단위다. 선박은 베링해협과 북극해를 지나 유럽의 대표적 항만인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으로 향한다.
이번 항해는 국내 선사가 컨테이너선으로 북극항로를 왕복하는 첫 시범 운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에도 국내 선박이 북극항로를 운항한 사례는 있었지만, 컨테이너 화물을 싣고 왕복 항해를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팬스타 아크로호에는 극지 운항에 적합한 내빙 성능이 적용됐다. 북극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선박과 항로, 화물 운송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번 출항은 단순히 새로운 뱃길을 경험하는 항해가 아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온 북극항로 활성화 구상을 실제 선박 운항으로 옮긴 첫 단계로 평가된다. 부산에서 적재한 화물을 싣고 북극해를 거쳐 로테르담까지 이동하는 전 과정은 한국 해운업이 새로운 유럽 연결 경로를 검토하는 실증 자료가 된다. 항해 자체뿐 아니라 출항 준비, 화물 선적, 극지 운항, 목적지 도착과 귀환까지 이어지는 전체 운송 과정이 중요하게 관찰될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초 북극항로 컨테이너선도 부산에서 출발
부산은 북극항로 컨테이너 운송의 역사에서 이미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북극항로를 운항한 컨테이너선인 덴마크 머스크사의 ‘벤타 머스크’호도 2018년 8월 28일 부산에서 출항했다. 세계 최초 시범 운항의 출발지였던 부산에서 2026년에는 한국 선사의 첫 컨테이너선 왕복 실증이 시작된 것이다. 두 항해를 연결해 보면 부산이 북극항로 논의에서 일회성 기항지가 아니라 출발 거점으로 거듭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해운업계에서 특정 항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역할을 하는 항만은 ‘퍼스트 앤 라스트 포트’로 불린다.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퍼스트 앤 라스트 포트로 기능할 수 있다는 기대는 벤타 머스크호의 출항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된 바 있다. 이번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는 그 가능성을 한국 선사가 직접 시험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외국 선사의 역사적 시범 운항을 지켜보는 단계에서 벗어나 한국 기업이 선박과 화물을 투입해 운송 경험을 축적하는 단계로 이동한 것이다.
이 변화는 부산항의 경쟁력을 항만 규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항로가 실제 물류망으로 정착하려면 어느 항만에서 화물을 모으고, 어떤 선박이 운항하며, 출발과 귀환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함께 검증돼야 한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에서 출항했다는 사실은 한국 선사와 부산항이 이 과정의 앞부분을 직접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시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실제 운항 경험을 한국이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해운 실증을 넘어 남부 해양경제권의 성장 전략으로
정부는 지난 5월 북극항로 활성화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해양 경제 거점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담은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 방향’을 발표했다. 부산은 한국 최대 항만도시이며, 울산과 경남을 포함한 남부 지역은 해양 산업을 기반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다. 정부는 이 방향을 정책으로 구체화한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 실행계획’도 마련할 예정이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출항은 이런 구상이 실제 산업 현장과 만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정책의 핵심은 항로 하나를 새로 개척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북극항로를 활용하려면 출발항의 화물 집적 능력과 환적 기능, 극지 운항에 적합한 선박, 안정적인 항만 운영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전문가들이 부산항의 항만 인프라를 고도화해 글로벌 환적 허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 한 척의 시범 운항이 지속적인 물류 흐름으로 이어지려면 항만과 선사, 화물 운송 체계가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항해는 정부 전략과 민간 선사의 실행력이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정부가 북극항로 활성화와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이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부산 기반 기업이 실제 선박을 투입했다. 정책이 목표를 설명한다면 기업의 운항은 그 목표가 현실에서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실증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은 향후 부산항의 역할과 필요한 인프라를 판단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가치가 크다고 분석된다.
한국 해운의 경쟁력, 새로운 항로에서 시험대
북극항로 시범 운항의 성과는 출항 자체보다 전 과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팬스타 아크로호는 부산에서 화물을 적재한 뒤 베링해협과 북극해를 통과해 로테르담항까지 운항한다. 국내 선사 최초의 컨테이너선 왕복이라는 성격을 고려하면, 이번 항해에서 얻는 경험은 같은 조건을 반복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새로운 항로가 산업적 선택지가 되려면 일회성 성공을 넘어 운항과 물류의 재현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산항에는 글로벌 환적 허브로서의 기능을 실제 성과로 연결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다. 세계 최초 북극항로 컨테이너선이 부산에서 출발한 역사와 한국 선사의 첫 왕복 실증이라는 현재의 움직임은 부산에 유리한 상징 자산이다. 그러나 상징을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항만 인프라 고도화와 해양 경제 거점 육성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운항은 부산이 북극항로의 길목에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역할을 직접 검증하는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세계 독자에게 이번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이 기존 항만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부산과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해상 물류 가능성을 자국 선사의 실제 컨테이너선으로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는 한국 기업의 도전, 부산항의 글로벌 거점 전략, 정부의 남부 해양경제권 구상이 하나의 항로 위에서 만난 사례다. 북극항로 시대의 주도권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국은 이제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배를 띄우고 경험을 축적하는 참여자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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