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5년 9월 17일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AI반도체혁신연구소’ 개소식을 열고, 정부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해온 국산 AI 반도체 육성 전략인 ‘AI 반도체 고도화 방안’의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 방안에 따라 정부는 2030년까지 총 8262억원을 투입해 국산 AI 반도체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국산 AI 반도체 점유율을 8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 계획은 급변하는 글로벌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한국의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엔비디아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입지를 넓히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정부 주도 AI 반도체 생태계 구축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AI 반도체 고도화 방안은 초고속·저전력 국산 AI 반도체 개발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기존에 여러 부처와 사업으로 나뉘어 있던 AI 반도체 관련 지원 사업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핵심 기술 개발부터 실증,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 체계를 갖추겠다는 것이 방안의 골자다. 정부는 이 사업을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상용화를 우선 지원하고 이후 메모리 기반 연산 기술과 결합한 저전력 고성능 반도체로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이날 개소한 연세대 AI반도체혁신연구소는 이러한 산학연계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이 연구소는 2030년까지 실전형 AI 반도체 석·박사급 인력 110명 이상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인공지능 시스템 아키텍처, 컴파일러, 인공지능 가속연산, 인메모리 컴퓨팅 등 세부 분야별 연구센터를 두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연구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술 개발과 동시에 미래 AI 반도체 산업을 이끌 전문 인력을 육성하겠다는 종합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경쟁 구도와 국내 기업의 대응
한국 AI 반도체 생태계의 또 다른 축은 국내 기업들의 자체 기술 개발과 조직 역량 강화다. 삼성전자는 2024년 초 출시한 ‘갤럭시 S24’ 시리즈를 통해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자체 AI 시스템 ‘갤럭시 AI’의 확산을 이끌었고, 2025년에는 후속 모델인 ‘갤럭시 S25’ 시리즈를 통해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LG전자는 현대자동차 AI 전문조직 에어스 컴퍼니 대표를 지낸 김정희 전무를 인공지능연구소장으로 영입해 음성·영상 인식,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차세대 AI 기술 개발 역량을 보강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국내 반도체 산업 전반의 수요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데이터센터의 AI 연산 수요가 늘어나고 AI 탑재 PC와 에지 AI 기기가 확산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도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SK와 LG 계열사들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과 냉각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는 등 관련 산업 간 협력도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국산 AI 반도체 점유율 80%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용 GPU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NPU가 신뢰성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측면에서 검증된 성과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와 학계, 기업이 인력 양성부터 실증까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정부는 앞으로도 AI 반도체 고도화 방안에 따른 예산 집행과 연구 인프라 확충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연세대에 이어 다른 대학에도 AI반도체혁신연구소가 순차적으로 개소할 예정이며, 각 연구소는 매년 평균 20억원 안팎의 지원을 받아 최장 6년간 운영된다. 정부와 산업계가 이러한 인력 양성 및 기술 개발 노력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