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생태계가 정부의 대규모 지원 정책과 글로벌 AI 투자 급증이라는 우호적 여건 속에서도,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위축이라는 이중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5년 9월 1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리서치 기업 가트너는 2026년 전 세계 AI 관련 지출이 2조 달러(약 2,774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지만, 정작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정반대로 냉각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런 흐름을 상쇄하기 위해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의 세부 사업인 마이크로 딥스(Micro DIPS)를 통해 콘텐츠 AI를 비롯한 유망 분야 스타트업을 선정해 사업화 자금과 멘토링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 바이오와 함께 콘텐츠 AI 분야를 초격차 육성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AI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지원 확대에도 불구한 투자 시장 냉각
그러나 현장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벤처투자 업계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스타트업 투자액은 2조 2,40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9% 감소했다. 특히 시드부터 시리즈A까지 초기 단계 투자 건수는 전년 대비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으며, 초기 투자 유치 금액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소액 딜은 줄고 대형 초기 딜과 프리IPO 비중은 커지는 이른바 자금 쏠림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투자 한파 속에서도 일부 한국 AI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업스테이지는 시리즈B 투자에서 1,000억 원을 유치하며 최근 국내 AI 기업 중 최대 규모의 투자를 기록했고, 영상 이해 AI 기업 트웰브랩스는 엔비디아의 벤처투자 자회사 엔벤처스 등이 참여한 시리즈A 투자에서 700억 원을 유치하며 누적 투자 유치액을 약 1,060억 원으로 늘렸다.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은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을 거쳐 기업가치 1조 3,000억 원의 유니콘 지위에 올랐다. 자금이 소수의 검증된 기업과 AI 등 특정 분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들 기업이 예외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유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들의 AI 전략 가속화
한편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들은 AI 중심의 사업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AI를 탑재한 스마트폰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온디바이스 AI 기능 적용 기기를 늘려가고 있다. 네이버는 “온 서비스 AI” 전략 아래 자체 대규모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 실용적 AI 서비스 확산에 나서고 있으며, 카카오는 통합 AI 서비스 “카나나” 출시를 통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뒷받침도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식을 직접 주재했다. 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산업계·학계 등 50여 명이 참여하는 이 위원회는 AI 정책 전반을 심의·의결하고 부처 간 정책 조정과 이행 점검, 성과 관리까지 총괄하는 국가 최상위 전략기구로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출범식에서 모두를 위한 사람 중심의 포용적 AI 구현과 민관 원팀 전략 추진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서울시도 “2025년 AI 기업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지원 사업”을 통해 AI 기업들의 인프라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투자 한파가 역설적으로 한국 AI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투자자들이 내수 시장만을 겨냥한 사업 전략보다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과 실질적인 AI 기술 활용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스타트업들이 더욱 차별화된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압박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대기업의 플랫폼 혁신, 그리고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도전이 어떻게 맞물릴지가 한국 AI 산업의 향후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투자 시장의 위축이 단기적으로는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부담을 키우고 있지만, 옥석 가리기를 거친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낼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