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신종 감염병 대응 체계 전면 개편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대유행 경험을 토대로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국가비축물자 중장기계획과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플랫폼 국산화 사업을 두 축으로 삼아, 개인보호구와 의료장비 비축을 확대하고 신종 병원체가 출현했을 때 신속하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4월 17일 제1차 감염병관리위원회를 열어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적용되는 제2차 국가비축물자 중장기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신종 감염병 발생 초기 대응을 위한 개인보호구 상시 비축, 중증환자 치료 지원을 위한 의료장비 통합 관리, 주요 고위험 병원체에 대응하는 치료제와 백신의 도입·비축, 근거 기반의 효과적인 비축관리 지원체계 마련 등 네 가지 과제로 구성됐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마스크와 방호복 등 개인보호구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을 반영해, 상시 비축 물량과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정비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와 2020년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국내 감염병 대응 체계의 허점이 드러난 데 따른 후속 조치 성격이 짙다. 당시 방역 당국은 개인보호구와 진단시약 등 필수 물자의 초기 공급 부족, 중증환자 병상 확보 지연, 백신 개발 지연 등을 뼈아픈 경험으로 지목한 바 있다. 이번 중장기계획은 이런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평상시부터 물자와 인력, 연구개발 역량을 상시적으로 유지·관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축물자·검역체계 정비에 예산 투입
질병관리청의 2025년도 예산은 1조 2,698억원으로 편성됐다. 코로나19 관련 대응 예산이 줄면서 2024년의 1조 6,303억원보다 3,605억원 감액됐지만, 신종 감염병 대비 사업에는 신규 예산이 배정됐다. 탄저균 등 생물테러 발생 시 초동 대응에 쓰일 탄저백신 5만명분 비축에 48억원, 개인보호구 약 2,186만개의 보관과 배송 비용으로 30억원이 각각 새로 반영됐다. 아울러 공항과 항만의 검역 업무시설을 확충하고 전자검역시스템을 추가로 6대 구축하는 등 검역 관리 예산도 확대했다. 이와 함께 신종 감염병 대비·대응 국제협력과 다제내성균 실험실 조사를 위한 세계보건기구(WHO) 협력센터 운영에도 1억원이 새로 배정돼, 국내 대응 체계를 국제 기준에 맞춰 운영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백신주권 확보 위한 mRNA 플랫폼 구축
정부는 신종 병원체가 출현했을 때 100일에서 200일 안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이른바 초고속 백신 개발 체계를 목표로, 2025년부터 메신저리보핵산 백신 플랫폼 확보 사업에 착수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거쳐 시작된 이 사업은 비임상 단계부터 임상 3상까지 4년에 걸쳐 연구개발을 지원하며, 2028년까지 자체 mRNA 백신 플랫폼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질병관리청이 백신 개발 전 주기 전략을 총괄하고,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중심으로 다부처 협력을 통해 인허가와 특허 등 규제 해소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mRNA 핵심 요소 기술의 국산화와 함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백신 후보물질 발굴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국내외 이동이 늘어나면서 감염병 전파 위험도 함께 커지는 만큼, 예방접종을 비롯한 선제적 대응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절기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을 9월 22일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는 등 감염병 대응 실무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중장기계획은 2023년 수립된 제3차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의 연장선에 있다. 해당 기본계획은 감염병 위기 대비·대응 역량 강화, 예방적 감염병 관리, 연구개발과 기술 혁신, 대응 인프라 확충 등 네 가지 전략 과제를 담고 있다. 정부는 2029년까지 매년 시행계획을 통해 비축물자 확보 현황과 mRNA 백신 플랫폼 연구개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감염병관리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장기 대응체계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정권 교체나 예산 편성 상황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재정 투입이 지속돼야 하고, 국제 백신 개발 협력체와의 정보 공유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는 신종 병원체에 대한 감시 체계를 촘촘히 하는 동시에, 실제 위기 상황에서 비축물자와 의료 인프라가 신속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모의훈련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