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에서 서울로, 바이러스학자의 길
이호왕은 1928년 10월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다. 고향 함흥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월남해, 전시연합대학 체제로 운영되던 서울대학교로 학적을 옮겨 학업을 이어갔다. 195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학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3월부터 1956년 9월까지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복무한 뒤 예편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해 의학 석사와 이학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고 귀국했다.
일본뇌염에서 유행성 출혈열로, 연구의 전환
귀국한 그는 196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처음에는 일본뇌염바이러스를 연구했다. 이후 그는 연구의 중심을 유행성 출혈열로 돌렸다. 이 병은 병원체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환자를 괴롭혀온 괴질이었다. 그는 1969년부터 미 육군성의 지원을 받아 이 연구를 이어갔지만 6년이 지나도록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전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윌리엄 잴리슨이라는 과학자가 쓴 책에서 들쥐 폐 속 곰팡이를 병원체로 지목한 대목을 읽은 그는 이때부터 쥐의 폐 조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75년 12월 20일, 그는 중고 형광현미경 앞에서 항원 반응을 살피다가 등줄쥐 폐 조직 속에서 오랫동안 뒤쫓던 병원체를 찾아냈다.
세계 최초의 발견, 한탄바이러스
이후 4년 동안 그는 기존에 보고된 500여 종의 바이러스와 이 병원체를 하나하나 대조한 끝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발견 장소인 한탄강의 이름을 따 이를 한탄바이러스라 이름 붙였다. 1976년 한국형출혈열, 즉 신증후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한탄바이러스는 한국인이 발견한 최초의 병원미생물로 기록되며, 오늘날 전 세계 의학 및 생물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서울바이러스와 한타바이러스 속의 제안
발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0년 이호왕은 서울 서대문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붙잡은 집쥐 몸에서 또 다른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를 찾아내 이를 서울바이러스라 이름 붙였다. 이는 한국에서 발견된 두 번째 병원미생물이었으며, 유행성 출혈열이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감염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는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함께 아우르는 새로운 바이러스 속의 이름으로 한타바이러스를 국제 바이러스학계에 제안했고, 이는 그대로 공인받았다.
진단법에서 백신까지, 한타박스의 탄생
이호왕은 병원체 발견에 머물지 않고 진단 키트와 예방 백신 개발에도 나섰다. 1981년부터 백신 개발을 시작한 그는 1985년 무렵 바이러스를 동물 조직에서 계속 배양하면 병원성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GC녹십자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1990년 유행성 출혈열 예방백신의 제조 허가를 받았고, 임상시험을 거쳐 1991년부터 한타박스라는 이름으로 시판에 들어갔다. 한타박스는 한국의 첫 신약으로 기록됐다. 세계보건기구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해 그가 몸담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바이러스연구소를 세계에서 하나뿐인 WHO 신증후출혈열 연구협력센터로 지정했으며, 그는 1982년 이 센터의 소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발생하는 두 종류의 유행성 출혈열을 함께 예방하는 혼합백신을 개발해 특허를 얻었다. 그는 유행성 출혈열과 관련해 국내외에 2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관련 특허 10건을 등록했다.
학회 활동과 국내외 수상
이호왕은 1971년 대한바이러스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고, 1973년부터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이어갔다. 1994년에는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소 소장을, 1998년에는 대한백신학회 초대회장 겸 명예회장을 맡았으며, 2000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에 올랐다. 그의 업적은 국내외에서 잇달아 인정받았다. 1979년 미국최고시민공로훈장, 1980년 대한민국학술원상, 1987년 인촌상, 1989년 한국과학상, 1992년 호암상, 1994년 태국 마히돈왕자국제의학상, 2001년 일본 니케이아시아상, 2002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고,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201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에는 의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헌신한 공로로 제6회 서재필 의학상을 받았다. 2021년에는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로 클래리베이트 인용상 후보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오늘날 이호왕을 기억하는 이유
이호왕은 병원체 발견부터 진단법과 예방 백신 개발까지, 한 질병을 둘러싼 전 과정을 완성한 세계 최초의 과학자로 꼽힌다. 그가 찾아낸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 그리고 이 둘을 아우르는 한타바이러스 속의 제안은 유행성 출혈열의 공포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진단과 예방의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신약 한타박스와 함께, 그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세계 의학계가 기억하는 한국 과학사의 이정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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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위키백과 「이호왕」 — 위키백과 기여자, CC BY-SA 4.0
- 이호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