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원가 쇼크, 진앙은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다
2026년 3월 26일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변수는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발 고유가 충격이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면서 전쟁이 시작됐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같은 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로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뛰어올랐다.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월 9일 배럴당 111.24달러까지 치솟았고, 국내 원유 수입가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역시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 안팎에서 100달러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11일 결의 2817호를 채택해 이란에 상선의 항행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 화물선은 한때 150척 안팎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비용 구조를 다시 흔들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원유 공급망을 직접 겨눈 전쟁과 봉쇄
이번 충격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금지한다고 밝혔고, 국제해사기구(IMO)는 3월 1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해협 봉쇄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길목으로,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퍼센트가 중동산이라는 점에서 국내 영향은 즉각적이었다. 국내 하루 석유 소비량은 230만에서 280만 배럴 수준이며, 국내 정제 능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울산 지역 정유설비만 해도 하루 150만 배럴 이상을 처리한다. 해협 통과가 막히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해안 선적 등 우회 경로와 비축유 활용으로 단기 수급을 메우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정부가 보유한 비축유는 약 2억 배럴로 약 7개월분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이 특히 취약한 이유…에너지 수입 의존과 제조업 비중
이번 국면이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한국 경제의 체질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비중이 큰 구조를 갖고 있어 유가 상승이 생산비와 물류비,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압력, 소비자물가, 기업 마진, 가계 실질소득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정유사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산업은 원재료·운송·냉난방·포장 비용이 동시에 뛰는 구조다. 항공, 해운, 화학, 철강, 시멘트, 식품, 유통, 택배, 건설 등 에너지와 운송비 비중이 높은 산업은 원가 상승분을 즉시 떠안게 되며,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오른 비용을 제품 가격에 곧바로 반영하기 어려워 영업이익률이 먼저 깎이는 흐름이 나타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가격 협상력이 낮고 재고 관리 여력도 제한적이어서 원가 상승을 흡수할 완충 장치가 대기업보다 부족하다는 점도 이번 사태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다.
정부와 정유업계의 대응…석유 최고가격제와 대체 수입선 확보
정부는 전쟁에 따른 국내 기름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 3월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선적 경로를 확대하는 한편 베네수엘라산 원유 등 중동 이외 지역의 대체 수입선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회 경로는 운송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물류비 증가와 그에 따른 기름값 인상 요인을 동반한다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중동 이외 지역에서 원유를 수입할 때 발생하는 초과 운임을 석유수입부과금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은 대부분 단기 완충 장치로 평가되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재정 부담과 가격 왜곡 우려도 함께 커질 수 있어 정책 대응은 정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원가에서 물가·금리로 번지는 연쇄 파장
고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다음 단계 충격은 물가다. 국제유가 상승은 주유소 판매가격과 경유 가격, 항공권, 택배비, 외식 재료비, 공산품 가격 등에 순차적으로 스며든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경제에서는 유가가 생산자물가를 밀어 올리고,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과정이 소비 둔화 국면과 맞물려 경기 부담은 큰데 물가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유가 상승이 환율과 맞물릴 경우 파급력은 더 커진다. 에너지 수입대금 결제 부담이 커지고 달러 수요가 높아지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원화 약세는 다시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안정 경로를 더디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도 인플레이션 기대와 기업 실적 우려가 겹치면서 변동성이 확대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가계 입장에서는 주유비와 난방비뿐 아니라 식품 운송비, 온라인 배송비, 외식 비용, 항공료 등 생활비 전반이 서서히 압박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으며,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지방 거주 가구나 저소득층일수록 체감 부담이 더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관전 포인트…해협 정세와 4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앞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얼마나 더 지속되느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도 불구하고 해협 통항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이며, 사태가 길어질수록 국내 정유사들의 우회 조달 비용과 물류 부담도 함께 늘어날 소지가 있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다음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4월 10일로 예정돼 있어, 그때까지 나올 3월 물가와 수입물가 지표가 한국은행의 판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도입선 다변화 지원 등 완충 장치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용하느냐가 단기 물가 관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결국 지금의 원가 쇼크는 중동의 군사적 상황과 국내 에너지 수급 구조, 물가·통화정책이 한 지점에서 동시에 맞물리는 사안으로, 해협 정세의 향방에 따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와 지속 기간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