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2년째 이어지는 저성장 국면에서 물가 안정과 통화정책 정상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2024년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로 집계됐으며, 한국은행은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8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0.9%로 제시했다. 지난해 5월 2.1%로 제시됐던 이 수치는 올해 2월 1.5%, 5월 0.8%까지 낮아졌다가 8월 들어 소폭 상향 조정된 결과다. 저성장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50%에서 2.50%로 낮췄고, 이후로는 별다른 변화 없이 2.50%를 유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2024년 연간 2.3%를 기록하며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고, 한국은행은 202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 2026년은 1.9%로 전망하고 있다. 물가가 목표 수준에 근접하면서 통화정책 완화의 명분은 갖춰졌지만, 가계부채 증가와 자산시장 과열 우려가 추가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등을 통해 실물 경기와 금융안정 사이의 균형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조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금리 인하 사이클, 사실상 마무리 단계
2022~2023년 고금리 기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이번 인하 사이클은 2025년 5월 2.50%까지 내려온 이후 별다른 추가 조정 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 사이클이 사실상 종착점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투자는 고금리 여파로 2023년 -3.3%, 2024년 -8.1%의 감소세를 보였고, 건설 경기 부진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환율 변동성 속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 경신
환율과 증시는 2025년 들어 극심한 변동을 겪었다. 4월 7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여파로 코스피는 2400선이 무너지며 하루 만에 5% 가까이 급락해 프로그램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흘 뒤인 4월 10일 미국이 관세 유예 조치를 발표하면서 지수는 곧바로 2400선을 회복했다. 이후 반도체 업황 개선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코스피는 상승세로 돌아섰고, 9월 10일에는 장중 3316.64까지 오르며 4년 2개월 만에 3300선을 넘어 종가 기준 3314.53으로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9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2.7% 늘어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특히 반도체 수출액도 역대 최대치를 다시 썼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10월 들어서도 1400원대 중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수출 기업에는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지만,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수입 물가 상승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어려움은 단기적 경기 흐름에 그치지 않는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잠재성장률 하락,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 계속 불어나는 가계부채 등 구조적 과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 가계신용 규모는 1,860조원을 넘어섰고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도 90% 안팎에 이르러, 주요국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잇달아 제시한 2%를 밑도는 성장률 전망치들은 이런 구조적 요인이 이미 경제 전반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업황이 흔들릴 경우 경제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구조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앞으로의 관건은 미국의 관세·통상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느냐다. 4월 관세 충격에서 드러났듯 대외 정책 변화 하나에 증시와 환율이 요동치는 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11월 다음 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제시할 예정이며, 정부와 통화당국은 내수 진작과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택 공급 정상화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여부도 향후 내수 회복의 속도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만큼, 통화정책만으로 저성장을 돌파하기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으며,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