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아미의 목소리로 다시 채워진 LA
9월 1일 밤(현지시간), BTS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 ‘아리랑 in LA’ 공연을 열고 약 7만명의 아미(ARMY·BTS 팬덤)와 만났다. 2021년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이후 4년 9개월 만에 성사된 BTS의 LA 공연이다. 연합뉴스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떼창’으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환호로 바꿨다.
이번 무대는 단순히 한 도시를 다시 찾은 투어 일정 이상의 의미를 품었다. LA는 BTS가 데뷔 1년 차였던 2014년 힙합을 배우기 위해 건너갔던 도시다. 당시 멤버들은 거리에서 직접 무료 전단을 나눠주며 공연을 알렸고, 미국에서의 첫 쇼케이스도 이곳에서 진행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 BTS는 수만 명이 모인 스타디움의 중심에서 같은 도시와 다시 마주했다. 출발점에 가까웠던 공간이 세계적인 공연의 무대로 바뀐 셈이다.
공연장의 규모만 달라진 것도 아니다. LA 시의회는 월드투어를 기념해 ‘BTS 주간’(BTS Week)을 선포했고, LA 시청은 붉은색 조명으로 물들었다. 과거 거리에서 관객을 직접 찾아야 했던 그룹을 이제 도시가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적인 대비가 만들어졌다. BTS와 LA가 공유해온 시간을 아는 팬들에게 이번 공연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다.
‘아리랑’이 만든 언어를 넘어선 합창
이날 무대를 관통한 핵심 장면은 팬들의 참여였다. 다른 도시에서 같은 월드투어를 이미 관람한 팬도 적지 않았고, 관객들은 곡의 흐름을 익숙하게 따라가며 공연을 함께 완성했다. 특히 ‘바디 투 바디’에서 한국 민요 ‘아리랑’이 길게 이어지자 소파이스타디움 곳곳에서 이를 나지막이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불려온 선율이 LA의 대형 공연장에서 세계 팬들의 합창으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떼창’은 한국 공연 문화에서 관객이 가수의 노래를 집단적으로 따라 부르는 참여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장면은 단순히 후렴구를 크게 외우는 데 머물지 않았다. 팬들은 ‘아리랑’의 선율을 차분하게 이어받으며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를 좁혔다. 서로 다른 언어와 생활 배경을 지닌 관객들이 하나의 한국적 선율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음악이 번역보다 먼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월드투어의 이름과 공연 속 선율이 모두 ‘아리랑’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번 LA 무대에서 ‘아리랑’은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전통문화의 표본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따라 부르고 체험하는 현재의 음악으로 제시됐다. BTS의 곡과 무대 안에서 전통 선율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해외 팬들이 그 부분을 함께 부르면서 한국적 정서는 공연의 장식이 아닌 서사의 일부가 됐다.
한 번의 관람으로 끝나지 않는 팬들의 여정
공연장을 찾은 팬들의 사연은 BTS를 중심으로 형성된 팬 문화의 밀도를 보여줬다. LA에 사는 에이비와 러비는 멤버 정국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컵케이크 디자인의 의상을 직접 만들었다. 옷에는 ‘생일 축하해’라는 글귀를 크게 붙였고, 생일 축하용 머리띠까지 준비했다. 에이비는 BTS의 군 복무 전 LA에서 열렸던 ‘퍼미션 투 댄스’ 콘서트에도 참석했다며 이번 재회를 뜻깊게 받아들였다.
표를 둘러싼 경험도 팬의 기대를 실감하게 했다. 에이비는 날짜를 착각해 표 한 장을 쓰지 못하고 다시 구매해야 했지만, 공연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아미였다는 크리스티나는 BTS의 음악이 무엇보다 좋다며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관람한 뒤에도 LA 무대를 놓칠 수 없어 다시 찾았다고 전했다. 한 도시의 공연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투어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팬들의 모습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반복 관람은 동일한 공연을 단순히 되풀이해 소비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읽힌다. 관객은 도시마다 달라지는 분위기와 현장의 감정을 경험하고, 직접 만든 의상과 응원 방식으로 공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한다. 아티스트가 준비한 무대에 팬이 기억과 상징을 보태면서 각각의 공연은 별개의 경험이 된다. LA에서 이어진 능숙한 합창 역시 여러 무대를 거쳐 축적된 팬들의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로 분석된다.
12년의 간격이 증명한 BTS와 도시의 관계
2014년의 BTS와 2026년의 BTS를 연결하면 이번 LA 공연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첫 방문 당시에는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전단을 나눴지만, 현재는 LA 시의회가 기념 주간을 선포하고 약 7만명의 팬이 스타디움에 모였다. 두 장면 사이에는 12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 이번 공연은 그 변화의 크기를 숫자와 장면으로 동시에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동시에 BTS의 성장을 아티스트만의 서사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2021년 공연을 기억하는 팬, 2015년부터 활동을 지켜본 팬, 다른 도시 공연에 이어 LA까지 찾아온 팬들이 같은 공간에 모였다. “그리웠다”는 감정은 멤버들과 팬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니라 오랜 공백 뒤 다시 형성된 공동의 분위기에 가깝다. 그래서 이날의 환호는 재회의 기쁨인 동시에 긴 시간 관계를 이어온 데 대한 확인으로 읽힌다.
이달 첫 주 LA에서 이어지는 월드투어는 BTS가 과거의 출발점을 현재의 무대로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다. 거리의 전단, 첫 쇼케이스, 2021년 공연, 그리고 7만명의 합창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겹쳐졌다. 특히 ‘아리랑’을 따라 부른 세계 팬들의 목소리는 한국에서 시작한 음악이 해외 관객의 기억과 참여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의 언어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독자에게 이번 LA 공연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BTS의 귀환은 한 그룹의 성공담을 넘어, 음악과 팬 그리고 도시가 12년에 걸쳐 함께 만든 살아 있는 K-pop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