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2025년 9월 12일 세계 최초로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체제 구축을 선언했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도 HBM4 수율 개선에 속도를 내며 추격에 나서면서, 국내 반도체 양강 간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경쟁이 한층 격화하는 양상이다.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 확산으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두 회사는 차세대 HBM 기술력과 생산능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12단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한 데 이어, 9월 들어 세계 최초로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HBM4는 전작인 HBM3E 대비 대역폭이 두 배로 늘었고 전력 효율은 40% 이상 개선됐다. 고객사 시스템에 적용할 경우 AI 서비스 성능을 최대 69%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며, 동작 속도는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가 정한 8Gbps 기준을 웃도는 10Gbps 이상을 구현한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10나노급(1b) 공정과 자체 개발한 MR-MUF 적층 방식을 적용해 양산 리스크를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AI 가속기 제조사에 HBM3와 HBM3E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현재 글로벌 HBM 시장 1위 지위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추격, HBM4 수율 개선에 총력
그동안 HBM 경쟁에서 한발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HBM4 수율 끌어올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체제에서 1c D램(10나노 6세대) 공정 재설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연구개발(R&D) 팹에서 소량 웨이퍼로 진행한 샘플 테스트 기준 수율은 30%대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안에 HBM3E 양산 체제를 완전히 구축하는 한편, HBM4의 본격 양산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준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SK하이닉스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나아가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삼성전자의 HBM4 수율이 양산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향후 분기 실적 발표 등을 통해 진행 상황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전략적 집중, AI 메모리 올인 정책
SK하이닉스는 앞서 지난 3월 6일 카메라이미지센서(CIS) 사업에서 철수하고 관련 인력과 역량을 AI 메모리 분야로 재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07년 CIS 사업에 진출한 지 약 18년 만의 결정으로, 소니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CIS 시장에서 한 자릿수 점유율에 머물러 있던 사업을 정리하고 HBM 등 AI 메모리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회사 안팎에서는 이 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HBM4 조기 개발 완료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메모리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HBM 공급사들의 2026년 물량 협상이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AI 칩 수요 급증과 지정학적 리스크
HBM 시장의 성장 배경에는 AI 가속기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월 엔비디아의 중국향 H20 칩과 AMD의 중국향 MI308 칩에 대한 수출 승인을 재개하면서, 이들 칩에 HBM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추가 수요가 발생할 여지가 생겼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북미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 자체 AI 반도체 개발을 확대하면서 HBM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미중 갈등에 따른 수출 통제가 재차 강화될 경우 두 회사 모두 공급망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한다.
미래 전망과 시장 동향
업계에서는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HBM 수요가 당분간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AI 산업 전반의 과열 우려도 제기되지만, 아직까지는 AI 인프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HBM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 모두 차세대 HBM 기술 개발과 생산능력 확충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최종 승부는 수율 안정화 속도와 고객사 요구에 대한 대응력에서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