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후 첫 벨기에 공연이 1일(현지시간) 오후 브뤼셀 보두앵 국왕 경기장에서 열렸다. 공연장으로 가는 지하철은 이날 내내 만원이었다.
지하철 편수를 2배 늘렸지만 열차마다 자리가 없었다
보두앵 경기장행 6호선을 타려는 사람들은 시내 한 역 승강장에서 몇 대째 열차를 그냥 보내야 했다. 들어오는 열차마다 이미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 한 노신사에게, 인파 정리를 위해 나와 있던 브뤼셀 대중 교통회사 STIB 직원은 “BTS 때문에 지하철 편수를 2배 늘렸는데도 이 지경”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이 경기장의 수용 인원은 5만 명이다. BTS는 1일과 2일 저녁 이곳에서 월드투어 ‘아리랑’ 공연을 펼쳤고, 티켓은 판매 개시 30분도 채 안 돼 매진됐다. STIB가 공연 기간 매일 최대 6만 명이 경기장 주변에 몰릴 것으로 보고 지하철 증편과 운행 시간 연장, 역사 직원 추가 배치를 준비한 것도 그래서다. 벨기에 프랑스어 공영방송 RTBF는 이번 공연에 최대 12만 명의 팬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
맨체스터·핀란드·피렌체에서 온 아미들이 객차를 채웠다
간신히 비집고 탄 객차 안은 BTS 복장과 소품을 갖춘 아미들로 가득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승객 대다수의 얼굴이 땀으로 젖었지만 표정에는 설렘이 묻어났다.
20대 커플 에프릴과 알렉스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건너왔다. 필리핀 출신인 에프릴은 8년 전 마닐라에서 BTS 콘서트를 챙겨 볼 정도의 골수팬이다. 두 사람은 6∼7일 런던 공연을 보려다 예매에 실패해 브뤼셀을 택했고, 런던보다 호텔비가 덜 들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안전 문제로 외부 개찰구를 하나만 열어 둔 탓에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오기까지 20여 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아미들은 불평 대신 ‘아리랑’ 등 BTS 노래를 함께 불렀다. 개찰구 앞에서 만난 핀란드의 18세 고교생 로니아는 초등학생 때부터 BTS 노래를 들으며 자랐고, 3년간 용돈을 모은 끝에 ‘직관’이라는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갓과 도포를 갖춰 입은 벨기에 청년, 전단지 4만 장을 준비한 스웨덴 팬
입장까지 한참 남았는데도 경기장 앞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갓과 도포에 고무신까지 착장해 사람들이 몰려 있던 젊은 남성은 26세 벨기에 청년 브누아였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갔다가 고궁에서 한복에 매료됐다며, 도포는 최근 파리에서 샀고 갓은 한국에 주문해 배송받았다고 했다. 8년째 팬인 그는 유럽의 다른 아미들과 달리 자신은 거주지에서 공연을 보게 돼 꿈만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한글로 손수 ‘브뤼셀’이라고 적은 티셔츠 차림의 베로니카(53)는 나흘 전 이탈리아 피렌체를 떠나 25살 난 딸 샤론과 함께 도착했다. 딸보다 자신이 BTS를 훨씬 좋아한다는 그는 BTS 덕분에 난생 처음 브뤼셀에 와봤다며, BTS가 유럽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브라질계 스웨덴인 세드릭은 ‘ARIRANG 영원히 함께 BTS’라는 문구를 담은 전단지를 공연장 앞에서 나눠줬다. 뒷면에는 “우리는 이 종이로 BTS 멤버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습니다. 콘서트에서 우리 모두 아리랑을 부를 때 이 종이를 들어주세요”라는 설명이 적혔다. 아기 때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계 아내를 따라 아미가 됐다는 그는 직접 인쇄한 전단지 4만 장을 배포하려고 일찌감치 도착했다면서 “한국 피를 이어받은 아내의 영향인지 아리랑을 들으면 한국인들이 느끼는 정서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같은 날 밤 월드컵 32강전이 겹쳐 경찰도 대비했다
공연장 밖 곳곳에서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았다. 30대 경찰관 케니는 이날 저녁 벨기에 축구대표팀과 세네갈의 32강전도 잡혀 있어 바쁜 날이 될 것 같다면서도, BTS 공연 자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 경기에서는 흥분한 관중들로 돌발 상황이 자주 생겨 긴장감이 높다고 설명한 뒤, 공연을 보러 온 BTS 팬들은 “평화로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하철 역에서 빠져나오는 인파들을 한번 보라. 95% 이상이 여성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BTS 노래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어린 아들이 열렬한 팬이라 노래를 잘 안다는 그는 “건전하고 서정적인 BTS의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치안 유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연에는 네덜란드와 독일 등 인근 국가뿐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장거리 원정 관람을 온 팬들도 적지 않다고 경찰은 귀띔했다. 경기장 앞에서 현지 한국 식당이 판매한 김밥과 떡볶이, 양념치킨에도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BTS의 브뤼셀 공연은 2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