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년간 수도권 135만호 신규착공…LH 직접시행으로 공급 속도 높인다
2025년 9월 7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이른바 9·7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한국토지주택공사, 즉 LH가 공동주택용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직접 주택 건설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국무조정실, 금융위원회, 국세청이 함께 마련한 이 대책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서울과 수도권에서 연평균 27만호, 총 135만호의 신규 착공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는 최근 3년 평균 공급 실적 대비 약 1.7배 늘어난 규모로, 당초 예상됐던 수도권 공공택지 착공 물량 25만1000호에 12만1000호를 더해 37만2000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2026년 3월 말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의 관심은 이 대책이 발표 수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착공과 입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그동안 정부의 공급 대책은 발표될 때마다 총량 목표가 먼저 제시됐지만, 이후 실제 착공과 분양, 입주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돼 왔다. 9·7 대책이 이전 대책들과 다른 점은 단순히 공급 목표치를 높인 것이 아니라 시행 주체 자체를 바꿨다는 데 있다. LH가 사업 시행 주체가 되어 건설사에 설계와 시공을 발주하고, 건설사는 공사비만 받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 대책의 골자다. 총량보다 누가 시행하고 어떤 절차로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른 셈이며, 이 지점에서 LH의 역할 확대는 단순한 기관 활용을 넘어 공급 정책의 철학 자체가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왜 하필 LH인가, 정부가 공공시행 카드를 다시 꺼낸 이유
LH는 대규모 택지 조성, 공공주택 공급, 도시정비 지원, 보상과 인허가 협의 경험을 모두 보유한 사실상 유일한 공공 시행 주체다. 민간 시행사가 수익성과 자금 조달을 우선 판단하는 반면, LH는 정책 목표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서울과 수도권의 민간 정비사업은 이해관계 조정, 사업성 갈등, 금융 조달 부담, 인허가 지연이 중첩되면서 공급 속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정부는 집값 불안을 진정시키려면 수요 억제 정책과 별개로 예측 가능한 공급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가장 빠르게 집행할 수 있는 조직으로 LH를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금융 환경도 정책 설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국면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사업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담과 분양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아야 한다. 정비사업 조합 역시 공사비 상승과 추가 분담금 우려 탓에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LH를 앞세운 것은 이런 자금·리스크 구조를 공공 신용으로 일부 흡수해 사업 추진력을 복원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노후 임대주택과 노후 공공청사, 미사용 학교용지 등을 활용해 도심 내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민간 정비사업의 병목을 풀 수 있을까
이번 대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공급 물량 자체보다 재건축·재개발 시장의 병목을 실제로 해소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 공급의 상당 부분은 신규 택지보다 기존 시가지 정비사업에서 나와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조합 내부 갈등, 시공사 선정 문제, 공사비 재협상, 용적률과 기부채납 갈등이 얽히며 사업이 수년씩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공시행 확대의 강점은 이러한 지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LH가 사업 구조를 설계하고 이해관계 조정에 나서면, 민간 조합이 단독으로 감당해야 했던 행정적, 재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다.
다만 시장이 장점만 보는 것은 아니다. 공공이 시행 주체로 들어오면 사업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조합원 입장에서는 개발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민간 방식보다 수익 배분 구조가 보수적으로 짜일 가능성이 있고, 설계 자율성이나 상품 차별화도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책 발표 직후 관련 보도에서는 시행사에 땅을 팔지 않고 LH가 직접 짓는 방식의 장단점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엇갈렸다. 결국 공공시행이 성공하려면 속도와 수익성,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실수요자와 조합원이 체감할 변화는 다르다
실수요자 관점에서 LH 공공시행 확대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하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입지 좋은 지역의 공급 계획이 실제 착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매수 불안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 특히 청약 대기 수요에게는 정부가 목표 물량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5년 단위의 연차별 착공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반면 기존 정비사업 조합원과 토지주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공공이 사업을 주도할수록 기대 수익이 낮아질 수 있고, 민간 프리미엄이 붙는 개발 시나리오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 내에서도 빠른 사업 추진을 원하는 쪽과, 더 높은 일반분양가나 추가 개발 이익을 기대하며 공공 참여에 소극적인 쪽으로 입장이 갈릴 수 있다. 같은 정책이라도 시장 참여자의 위치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는 구조인 셈이다. 전세 시장에도 간접 영향이 예상되는데, 공공시행 공급이 본격화되면 중장기적으로는 신규 입주 물량이 늘어 전세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늘면서 특정 지역 전세가격을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행력과 신뢰가 관건, 집값 안정 효과는 시차 두고 나타날 듯
9·7 대책을 둘러싼 평가에서 공통으로 제기되는 지점은 정책 방향성보다 실행력 검증이 이제 시작됐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은 발표 당일보다 몇 달 뒤의 후속 절차에서 정책 신뢰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시행 확대가 실질적인 해법이 되려면 후보지 선정, 주민 동의 확보, 사업성 보정, 인허가 단축, 시공 체계 마련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건설이슈포커스 등 업계 보고서에서도 9·7 대책의 평가와 함께 보완이 필요한 사항들이 함께 제기된 바 있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절차가 막히면 공급 효과는 다시 발표 수치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은 결국 이 정책이 당장 집값을 잡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기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공급 정책은 본질적으로 시차가 길어서 발표에서 착공, 분양, 입주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의 정책이 내일의 매매가격을 직접 눌러주는 구조는 아니다. 다만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에서 향후 5년간 의미 있는 물량이 현실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되면, 추격 매수 심리는 일정 부분 누그러질 수 있다. 반대로 발표만 있고 후속 조치가 더디면 시장은 오히려 희소성을 재확인하며 가격 기대를 키울 수 있다. 이번 정책의 성패는 결국 135만호라는 물량 규모보다 연차별 착공 일정이 실제로 지켜지는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 실수요자라면 이번 대책을 단순한 집값 하락 신호로 해석하기보다, 어느 지역이 공공시행 후보지로 구체화되는지, 청약 가능한 공공주택과 일반분양 물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입주 시점이 본인의 주거 계획과 맞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주택 보유자나 투자 대기자는 지역별 편차를 더 면밀히 봐야 한다. 공공시행 확대가 발표됐다고 모든 지역에 같은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공급 기대가 분명한 지역과 공급 현실화가 어려운 희소 지역의 반응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결국 2026년 상반기 부동산 시장의 방향은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를 넘어, LH가 135만호 공급 계획을 얼마나 확실하게 현실화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