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록은 멈췄지만, 유해란은 다시 세계 정상권을 증명했다
한국 여자 골프의 유해란이 2일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주 리덤 세인트 앤스의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 링크스에서 끝난 AIG 여자오픈에서 최종 합계 1언더파 283타로 공동 6위에 올랐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경기 결과에 따르면 유해란은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3개를 잡았으나 보기 4개와 더블보기 1개를 기록해 3오버파 74타를 쳤다. 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구와키 시호는 5언더파 279타를 기록했고, 유해란과의 격차는 4타였다.
유해란에게 이번 대회는 단순한 시즌 마지막 메이저 출전이 아니었다. 그는 6월 말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 이어 지난달 12일 끝난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연속으로 정상에 올랐다. AIG 여자오픈에서도 우승하면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 3연승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세계랭킹 3위 유해란은 기대가 집중된 무대에서 공동 6위에 자리하며 우승에는 닿지 못했지만, 세 대회 연속으로 세계 골프 팬들의 시선을 끄는 중심에 섰다.
결과만 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도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 해에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 3승을 거둔 선수는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1961년 미키 라이트, 1986년 팻 브래들리, 2013년 박인비까지 4명뿐이다. 그 가운데 메이저 3연승을 달성한 선수는 자하리아스와 박인비뿐이다. 유해란은 이번 주 그 이름들과 나란히 거론됐고, 한국 선수로는 박인비 이후 다시 한번 대기록에 도전하는 주인공이 됐다. 우승 여부를 넘어 도전 자체가 현재 유해란의 위상을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선두로 반환점을 돌고도 흔들린 후반 36홀
유해란의 출발은 대단했다. 1라운드에서 66타를 적어낸 데 이어 2라운드에서는 69타를 기록했고, 중간 합계 7언더파로 선두에 나서며 기대를 크게 끌어올렸다. 앞선 두 메이저 대회 우승의 상승세가 AIG 여자오픈에서도 이어지는 듯했다. 첫날부터 우승 경쟁의 전면에 등장한 뒤 두 번째 라운드까지 가장 높은 위치를 지켰다는 사실은 세 대회 연속 우승 도전이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실제 경기력에 근거한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승부의 흐름은 후반 36홀에서 달라졌다. 유해란은 3라운드에서 74타를 친 데 이어 최종 라운드에서도 같은 74타를 기록했다. 두 라운드에서 각각 3타씩 잃으면서 중간 합계 7언더파였던 성적은 최종 1언더파로 내려갔다. 마지막 날에는 버디 3개로 반전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보기 4개와 더블보기 1개가 겹쳤다. 메이저 우승 경쟁에서는 한 번의 큰 실수뿐 아니라 작은 손실이 이어지는 상황도 순위에 즉각 반영된다는 점이 이번 스코어 흐름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유해란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최종 순위표에서 유해란과 같은 1언더파 283타를 기록한 선수는 대만의 슈웨이링, 싱가포르의 섀넌 탄, 일본의 다케다 리오, 잉글랜드의 찰리 헐과 로티 워드였다. 미국의 노예림은 4언더파 280타로 3위, 미국의 넬리 코르다와 태국의 지노 티띠꾼은 2언더파 282타로 공동 4위에 올랐다. 여러 국가의 강자들이 촘촘한 격차로 늘어선 순위에서 유해란이 톱10을 지킨 것은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다시 확인한 결과다.
“이것이 골프”…아쉬움을 다음 도전의 힘으로
유해란은 경기 뒤 기록 달성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많은 응원을 받았고 세 번째 메이저 우승과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면서도 “이것이 골프”라고 말했다. 이어 “이래서 저희가 스포츠를 좋아하고 골프를 좋아하는 것 아니겠나. 다음 대회를 더 열심히 준비할 이유가 생겼다”고 밝혔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도 결과를 과장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다음 준비의 동력으로 바꾼 태도가 팬들의 응원을 부르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도전은 유해란이 메이저 무대의 압박을 견뎌야 하는 위치까지 올라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앞선 두 대회 우승으로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AIG 여자오픈 2라운드 선두까지 달렸기 때문이다. 상대를 추격하는 선수와 모두의 표적이 된 선수가 느끼는 부담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된다. 유해란은 바로 그 무게 속에서 나흘 경기를 완주했고, 결과를 톱10으로 묶었다. 메이저 3연승은 불발됐지만 앞으로 비슷한 우승 경쟁을 펼칠 때 활용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얻은 셈이다.
시즌 마지막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를 공동 6위로 마쳤다는 사실도 분명한 성과다. 유해란은 이번 대회 하나만 놓고 보면 후반 라운드에서 타수를 잃었지만, 세 개 메이저 대회를 연결해 보면 우승, 우승, 공동 6위라는 강렬한 흐름을 만들었다. 한 번의 우승으로 주목받는 수준을 넘어 연속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한국 골프 팬들에게 이번 공동 6위가 좌절보다 다음 우승을 기다리게 하는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일본의 새 챔피언과 더 뜨거워진 아시아 여자 골프
우승 트로피는 2003년생 일본 선수 구와키 시호에게 돌아갔다. 대회 전 세계랭킹 46위였던 구와키는 최종 합계 5언더파 279타로 독일의 에스터 헨젤라이트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전에서 승리했다. 2021년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2024년 6월 시세이도 레이디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둔 이후 일본프로골프 투어 통산 5승을 쌓았다. 올 시즌에도 2승을 기록하며 일본프로골프 투어 연간 포인트 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메이저 정상까지 차지했다.
AIG 여자오픈에서는 지난해 야마시타 미유에 이어 2년 연속 일본 선수가 우승했다. 올해 최종 순위에서도 일본의 구와키가 우승하고 다케다가 공동 6위에 올랐으며, 한국의 유해란과 태국의 지노, 대만의 슈웨이링, 싱가포르의 섀넌 탄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정 국가의 독주라기보다 아시아 여러 나라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의 우승과 톱10 경쟁에 폭넓게 등장한 모습이다. 유해란의 연속 우승 도전과 구와키의 새로운 챔피언 등극은 아시아 여자 골프의 경쟁 구도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해란의 메이저 3연승은 이번에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의 두 차례 연속 우승과 AIG 여자오픈 공동 6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실패를 다음 대회를 준비할 이유로 받아들이며 다시 출발선에 섰다. 한국 팬들에게는 박인비 이후 다시 역사적인 기록을 꿈꾸게 한 대단한 도전이었고, 세계 독자들에게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들이 여자 골프 메이저 무대의 흐름을 얼마나 역동적으로 바꾸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 흥미로운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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