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AI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소버린 AI 전략’을 본격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AI 기술 생태계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소버린 AI는 특정 국가나 기업의 모델과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발, 운영할 수 있는 AI 기술을 뜻한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이번 전략은 최근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AI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첨단 AI 모델과 반도체에 대한 접근 제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마련됐다. 정부는 AI 기술이 이미 국방, 금융, 행정 등 국가 핵심 인프라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는 만큼, 해외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안보상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 인프라를 아우르는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는 설명이다.
AI 기술 의존도 현황과 위험성
현재 한국의 AI 기술 생태계는 미국과 중국 기업의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 분야에서는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중국 기업들의 모델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들 해외 모델에 대한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정부는 이러한 해외 의존 구조가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AI 기술이 군사, 정보, 금융 등 핵심 분야에서 갈수록 광범위하게 쓰이는 상황에서 해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기술 공급 중단, 데이터 유출, 알고리즘 통제력 상실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기술이 이미 국가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은 만큼 디지털 주권 확보 차원에서 독자적인 AI 기술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형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 주권
소버린 AI 전략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한국어에 특화한 대규모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개발이다. 정부는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을 반영한 독자 AI 모델을 개발해 해외 모델이 갖는 한계를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한국어 고품질 학습 데이터 구축에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어 AI 학습 데이터는 영어 등 주요 언어에 비해 절대적인 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정부는 대규모 한국어 데이터셋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AI 모델의 성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주권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국내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해외로 무분별하게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국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확충해 데이터의 국내 처리 비율을 점차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반도체와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AI 전용 반도체 개발도 소버린 AI 전략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국내 산업계에서는 공급망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국산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해 차세대 AI 칩 개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NPU(신경망처리장치)와 같은 AI 전용 프로세서 개발에 투자를 집중해 국내 AI 반도체 기술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에 이르는 AI 반도체 공급망 전 과정의 국산화를 추진해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AI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산 AI 서버와 슈퍼컴퓨터 개발도 병행된다. 정부는 구축이 진행 중인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AI 연구개발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해 대규모 AI 모델 개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 인재 양성과 산업 생태계 활성화
소버린 AI 전략의 성패는 결국 우수한 AI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정부는 대학의 AI 관련 학과를 확대하고 재직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국내 AI 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해외 우수 AI 인재 유치를 위한 비자 절차 간소화, 연구 환경 개선, 창업 지원 등의 정책도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국내 AI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다양한 AI 서비스와 솔루션이 개발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소버린 AI 전략을 통해 한국이 AI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동시에 디지털 주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의 지속성, 민간 기업과의 협력 구조,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 해소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AI 윤리와 안전성 확보에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해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