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30일 발표한 2027년 사장급 인사에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를 지켰다. 미국 현지에는 사장급 조직인 미주총괄이 새로 생겼고, 핵심 사장 3명의 보직이 다음 달 1일부터 바뀐다.
곽노정 대표 유임 배경
곽 사장은 2022년 3월부터 SK하이닉스를 이끌고 있으며, 이번에도 대표이사 사장을 계속 맡는다. 부회장 승진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결론은 현 경영 체제 유지였다. 역대 최대 실적과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차세대 제품 개발과 대규모 투자처럼 쌓여 있는 과제를 함께 고려한 인사로 풀이된다. 투자와 장기 공급계약 이행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만큼 경영진을 바꾸기보다 지금의 전략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세대 HBM인 HBM4를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일이 급선무로 꼽힌다. 회사는 올해 4분기 HBM4의 출하량과 매출이 기존 주력 HBM3E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과 투자 일정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실적(연결 기준)은 매출 104조6155억원, 영업이익 83조3338억원이었다. 1년 전 같은 분기보다 매출은 327.9%, 영업이익은 632.1% 늘었고, 두 지표 모두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생산 설비 확충도 이어진다. 청주 M15X 공장은 연말까지 생산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는 첫 번째 공장 Y1이 내년 2월 첫 클린룸을 열 예정이고, 두 번째 공장 Y2는 내년 7월 착공을 앞두고 있다. 충북 청주의 신규 반도체 공장 M17도 내년 2월 건설에 들어간다. Y2와 M17에 투입되는 금액만 약 54조원이다.
확보해 둔 주문도 많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등 주요 고객사 14곳과 장기공급계약(LTA)을 맺었고, 이를 통해 확보한 물량은 2027~2028년 생산능력의 절반을 넘는다.
미주총괄 신설과 사장 3명 보직 이동
신설된 미주총괄은 안현 개발총괄 사장이 맡는다. 안 사장은 HBM과 소캠(SOCAMM) 등 AI 메모리 개발을 이끌어 온 기술 전문가다. 새 자리에서는 미국 빅테크 고객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현지 연구개발(R&D) 역량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 같은 AI 반도체 설계기업과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현지에 HBM 개발을 이끌어 온 기술 책임자를 배치한 것이다. 다만 미주총괄이 제품개발과 투자 결정에 대해 어느 정도 권한을 갖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미국 등에 글로벌 AI 리서치 센터를 새로 세웠고, HBM만 전담하는 기술 조직도 꾸린 바 있다.
안 사장이 떠난 개발총괄은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장 사장이 맡으며 연구원장직도 계속 겸임한다. 선행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온 차 사장은 차세대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을 함께 지휘하면서 선행 기술과 제품 개발의 연계를 강화하고, 연구 성과를 상용화로 잇는 데 힘을 쏟을 전망이다. 미래기술연구원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총괄은 그 결과를 상용 제품으로 만드는 조직이다. 두 조직의 책임자를 한 사람으로 묶은 것은 연구 성과가 제품에 적용되기까지의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풍영 SK수펙스추구협의회 담당 겸 SK하이닉스 글로벌성장TF 담당 사장은 코퍼레이트 센터(Corporate Center) 총괄로 자리를 옮긴다. 윤 사장은 SK그룹에서 전략·투자·사업개발과 AI 전환(AX) 분야를 거쳤고, 지난 7월부터 글로벌성장TF(태스크포스)를 맡아 중장기 사업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앞으로는 글로벌 사업 확장과 신규 성장동력 발굴을 담당한다.
역할 분담과 HBM 경쟁 환경
곽 대표 체제 아래에서 안 사장은 미국 고객과의 기술 협력, 차 사장은 연구개발, 윤 사장은 글로벌 성장전략과 투자를 맡는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HBM은 개발 단계부터 고객사의 반도체 설계와 패키징 구조, 전력 소비, 발열 특성을 반영해야 하는 제품이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차세대 제품 개발과 고객사 확보에 속도를 내면서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업계 전문가들은 “HBM 시장에서는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고객의 요구를 얼마나 신속하게 제품으로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고객 대응과 국내 연구개발 조직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이번 개편의 성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그룹 사장단 인사 기조
SK그룹은 이날 오전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소집해 각 멤버사 이사회가 결정한 2027년 사장단 인사 내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반도체는 안정, 에너지는 쇄신을 택했다. 주요 계열사 CEO 대부분이 유임된 가운데 에너지 계열 경영진은 전문가 중심으로 새로 짜였다. 지난해 주요 계열사 CEO를 대거 교체한 데 이어, 이번에는 기존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검증된 실무형 리더를 앞세운 것이 특징이다. 그룹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의 조속한 마무리, 재무 건전성 제고, AI와 첨단 기술 중심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지주회사 SK㈜에서는 장용호 대표이사가 유임됐고, 겸임하던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직은 내려놓고 SK㈜ 경영에 집중한다. 김선혁 SKC 전략부문장은 SK㈜ 담당 사장으로 승진해 계열사 운영개선 지원과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마무리를 맡는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창원 부회장이 계속 맡고, 권영수 SK이노베이션 전략본부장은 협의회 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에너지 계열에서는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CEO)에 정승일 SK㈜ 미래성장담당 사장이 내정됐다. 정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한국가스공사 사장,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냈고 올해 1월 SK그룹에 합류해 SK㈜ 미래성장담당 사장과 SK하이닉스 에너지 TF 사장을 맡아 왔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확대에 맞춰 전력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강동수 SK㈜ 담당 사장 겸 PM부문장은 SK이노베이션 사장(각자 대표이사) 겸 SK에너지 사장(대표이사)으로 이동이 내정됐다.
이 밖에 김원기 SK엔무브 CIC 사장이 SK지오센트릭 사장을 겸하고, SK어스온 신임 사장에는 김경준 기획·사업지원실장, SK온 트레이딩인터내셔널 CIC 사장에는 김태진 원유사업부장이 선임됐다. 윤병석 SK가스 사장은 SK디스커버리 신임 사장(대표이사)으로, 송경열 SK가스 전략본부장은 승진해 SK가스 신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해외 사업에서는 동남아 지역 총괄이 신설돼 추형욱 사장이 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