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분량이) 많지 않아서 금방 끝난다고 하셨는데, 촬영이 시작되니 점점 늘어나더라고요. 감독님께 ‘너무 특별한 것 아닌가요?’ 하고 묻기도 했죠.”
배우 이상이가 지난달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제작발표회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주인공 강성재(박지훈 분)의 상관인 4중대장 황석호 역으로 특별출연한 그는 매 회차 코믹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제작발표회에 함께 서고 음악 방송 특별 무대까지 선보였다.
이처럼 최근 방송가에서는 ‘특별출연’이나 ‘카메오’의 경계가 흐려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제작진·배우와의 인연으로 초반이나 마지막 한두 장면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데 그쳤다면, 요즘은 전 회차에 걸쳐 서사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핵심 인물로 비중을 키운다.
5개월간 3시간씩 특수분장, 그래도 특별출연
지난 17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의 곽동연도 같은 경우다. 세자 역은 당초 특별출연으로 기획됐으나 그는 약 5개월간 3시간씩 특수분장을 받고 와이어 액션과 크로마키 연기까지 소화했다. 작품 홍보 유튜브 콘텐츠에도 출연했다.
고충은 구체적이었다. 목부터 이마까지 고무 패치를 붙이는 분장을 한 채 한여름 경북 문경 야외에서 찍었다. 곽동연은 “얼굴이 덮인 것만으로도 숨이 잘 안 쉬어지더라고요”라고 했고, “감독님을 한순간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웃었다. 특수분장팀에서도 “계약서에 특수분장한다고 안 쓰고 들어왔느냐”고 농담했다고 한다.
그는 “친한 제작진 권유로 흔쾌히 합류했지만, 어느새 팀의 일원이 돼 있었다”고 돌아봤다. 연출을 맡은 최정규 감독은 “고생을 많이 해 제작진끼리 ‘사실상 타이틀롤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였다”며 “특별한 역할과 연기를 보여주셨으니 특별출연이 맞다”고 했다. 최 감독은 역할의 크기를 미리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작품의 재미를 위해 사전에 역할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부분은 제작진과 논의 끝에 자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포스터에도 오른 특별출연
이달 5일 13.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로 종영한 JTBC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의 손현주는 같은 소속사 주연 배우 이준영과의 인연으로 특별출연했다. 그가 연기한 강회장은 주인공과 몸이 뒤바뀌는 ‘영혼 체인지’ 설정의 중심인물이어서 첫 회부터 최종회까지 등장했고 메인 포스터에도 얼굴을 올렸다.
연출을 맡은 고혜진 PD는 종영 인터뷰에서 “대본에 없던 장면을 자꾸 요청했는데도 흔쾌히 응해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옥택연은 소속사 대표인 소지섭이 주연한 SBS ‘김부장’에서 김 부장의 북한 공작원 동료 역으로 특별출연해 강렬한 액션 신을 선보였다. 다음 달 첫 방송하는 ‘재벌X형사2’의 유승호도 사이코패스 성향의 재벌 유성원 역으로 특별출연해 새로운 빌런으로 긴장감을 높일 예정이다.
신뢰·마케팅·도전 의식이 맞물린 결과
업계에서는 이런 ‘주연급 특별출연’의 증가를 제작진과 배우 간의 깊은 신뢰, 마케팅 전략,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의 도전 의식이 맞물린 결과로 본다. 친분 있는 유명 배우의 합류로 화제성을 끌어올릴 수 있고, 감초 연기가 작품의 색깔과 맞아떨어지면 일부러 비중을 늘려 온라인에서 ‘밈’으로 소비되게 만들기도 한다.
다만 남발은 경계한다. 극의 흐름을 해치는 과도한 특별출연이나 계획 없는 분량 확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어 세심한 사전 논의를 거친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특별출연의 출연 횟수나 섭외 방식에 정해진 틀이 사라졌다”면서도 “장르나 극의 전개상 특별출연 섭외가 작품에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지 면밀히 따진 뒤 배우와의 합의를 거쳐 출연을 확정한다”고 말했다.
배우 쪽도 손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분량에 연연하지 않고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나 장르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어서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과거에는 제작진과의 인연을 드러내기 위해 한두 장면 짧게 등장하는 ‘노 개런티’ 출연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작품에 선사하는 ‘특별한 임팩트’ 자체에 방점이 찍히는 분위기”라며 “배우는 주·조연 구분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캐릭터나 플랫폼에 도전할 수 있고, 시청자 역시 완성도 높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즐길 수 있어 이러한 특별출연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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