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의 정규 15집,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8일 서울 마포구 연남스페이스에서 정규 15집 ‘시즈 더 데이’ 쇼케이스를 열고 일상의 행복과 위로를 담은 신곡을 소개했다.
앨범의 중심에는 거창한 성공 대신 지금 곁에 놓인 삶이 자리한다.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과 부부 사이의 감정, 잘 익은 감 몇 개가 노래의 소재가 됐다. 지나온 선택을 돌아보는 회한도 함께 담겼다. 안치환은 이번 앨범에 대해 내면을 다룬 다른 색깔의 노래를 만들고 싶었으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담았다고 밝혔다. 앨범 제목 ‘시즈 더 데이’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의 영어 표현이다. ‘오늘을 즐겨라’ 또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의미를 품는다. 제목과 수록곡의 소재를 함께 보면, 이번 작품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기보다 평범한 하루를 새롭게 바라보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순간을 노래의 앞자리에 놓았다는 점이 이번 앨범을 이해하는 첫 단서다.
타이틀곡은 ‘나는 오늘만 산다’이며 앨범에는 모두 15곡이 실렸다. 부부 사이의 애환을 비유한 ‘티비 리모컨’, 삶의 회한을 노래한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어’가 함께 수록됐다. 한국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에서 영감을 얻은 ‘동주와 지용 인 교토’도 포함됐다. 시비는 시를 새겨 세운 기념비로, 이 곡의 출발점이 된 장소는 일본 교토다. 집 안의 사물에서 다른 나라에 자리한 시인의 흔적까지 소재의 폭이 넓다. 다만 이 노래들은 서로 무관한 풍경을 늘어놓기보다 한 사람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으로 연결된다고 해석된다. 현재를 즐긴다는 제목 아래 기쁨뿐 아니라 아쉬움까지 품었다는 점에서, 앨범의 위로는 단순한 낙관과 구별된다.
‘나는 오늘만 산다’, 친밀한 협업으로 전하는 응원
‘나는 오늘만 산다’의 작사와 작곡은 음악 그룹 자전거탄풍경의 송봉주가 맡았다. 안치환과 절친한 동생 사이인 음악가의 작품이 앨범을 대표하는 곡으로 선택됐다. 노래는 제목과 같은 유쾌한 구절을 반복하며 힘찬 응원을 건넨다. 반복되는 문장이 메시지의 중심을 잡는 방식이다. 복잡한 설명보다 간결한 선언을 앞세워, 듣는 사람이 자신의 하루에 그 말을 대입할 여지를 남긴다고 볼 수 있다. 앨범 제목이 현재에 충실하자는 큰 방향을 제시한다면, 타이틀곡은 그 방향을 한 사람의 목소리로 바꾼 표현이다. 외국어로 된 앨범명과 한국어 노래 제목이 같은 생각을 서로 다른 문장으로 전달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곡 제목만 떼어 놓으면 ‘오늘만 산다’는 말은 앞날을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소중함을 담았다는 제작 의도와 연결하면 의미는 달라진다. 이 앨범에서 오늘은 흘려보낼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쏟아야 할 대상으로 해석된다. 지나간 선택을 돌아보는 곡이 함께 실린 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과거를 지우거나 모든 걱정을 잊으라는 주문보다는, 여러 감정을 안은 채 지금을 살아가자는 응원에 가깝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유쾌한 타이틀곡과 회한을 다룬 수록곡이 한 작품 안에 놓이면서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에 무게가 더해지는 셈이다. 즐거움과 성찰을 양자택일로 보지 않는 구성이 이번 작품의 감상 지점이다.
싱어송라이터의 정규앨범에서 다른 음악가가 쓴 곡을 중심에 놓은 선택도 주목할 대목이다. 확인된 협업의 핵심은 송봉주가 노랫말과 곡을 만들고, 안치환의 앨범에서 그 노래가 타이틀곡이 됐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이번 협업은 자신이 직접 쓴 문장만이 아니라 가까운 동료의 언어로도 음악적 방향을 표현하는 사례로 읽힌다. 곡의 유쾌한 선언은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앨범의 취지와 맞닿는다. 두 음악가의 친분 자체보다 그 친분에서 나온 노래가 작품 전체의 메시지와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팬에게는 익숙한 가수의 목소리와 동료 음악가의 창작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볼 기회다.
리모컨과 회한, 평범한 소재가 넓히는 감정의 폭
‘티비 리모컨’은 부부 사이의 애환을 생활 속 물건에 빗댄 노래다.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사건을 내세우기보다 친숙한 사물을 선택했다. 생일 축하와 잘 익은 감 역시 일상에서 발견한 소재들이다. 이런 선택은 청자가 노래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배경지식을 갖출 필요를 줄인다고 분석된다. 누군가를 축하하는 일과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은 각자의 경험에 연결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어 가사의 세부 표현을 모르는 해외 청자에게도 소재 자체는 감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앨범의 친근함은 모든 감정을 밝게 처리하는 데서가 아니라, 노래할 만한 순간을 멀리서 찾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평가된다.
반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어’는 삶의 회한을 다룬다. 현재의 행복을 내세운 작품 안에 지나간 선택을 되짚는 정서가 함께 놓인 것이다. 여기서 앨범 제목은 모든 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라는 단순한 구호로만 읽히지 않는다. 아쉬움도 삶의 일부로 남겨둔 채 현재를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타이틀곡의 힘찬 응원과 이 곡의 회한은 감정의 방향이 다르다. 그렇다고 서로의 의미를 지우는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후회가 있는 사람에게도 오늘의 기쁨이 필요하다는 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밝은 노래와 내면을 돌아보는 노래를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15곡은 하나의 기분만 전달하기보다 여러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읽힌다.
‘동주와 지용 인 교토’는 생활 속 소재들과 또 다른 결의 출발점을 갖는다. 한국 시인들의 시비를 일본 교토에서 마주한 경험이 창작의 영감이 됐다. 이 곡을 통해 앨범의 시선은 집 안의 관계를 넘어 장소와 문학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동한다. 다만 구체적인 가사나 음악적 구성까지 공개된 설명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확인되는 것은 시인의 흔적을 만난 일이 한 곡의 소재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리모컨과 감, 시비처럼 서로 다른 대상이 같은 앨범에 담긴 사실은 창작의 입구가 다양함을 드러낸다. 특별한 소재와 평범한 소재를 나누기보다, 그것을 마주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발견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해석된다.
노래 자체로 다가가겠다는 선택, 국경을 넘는 일상의 언어
안치환은 쇼케이스에서 일상과 시대라는 주제를 따로 나눠 노래를 만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창작은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복잡한 감정을 포착하는 일이라는 취지다. 이는 이번 앨범을 어떤 하나의 감정으로만 규정하지 않도록 하는 설명이다. 생일을 축하하다가도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고, 가까운 관계의 애환과 작은 행복을 함께 느낄 수도 있다. 수록곡에 등장하는 정서의 차이는 이런 창작관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번 작품의 변화는 특정한 주제를 버렸다는 선언보다 지금 마음이 향하는 곳을 음악으로 옮긴 결과로 읽는 편이 타당하다. 일상의 위로를 앞세웠지만 인간의 복잡함까지 단순하게 정리한 앨범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신곡을 알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노래 자체의 힘을 믿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태도를 강조했다.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서면 몸이 굳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노래가 음악 인생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 역시 드러냈다. 이는 성과를 예고하는 발언이 아니라 작품에 거는 창작자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래의 힘을 강조한 만큼 이번 앨범을 판단할 중심도 수록곡과 그 안의 메시지에 놓인다. 타이틀곡의 반복되는 응원, 부부의 애환을 담은 비유, 회한을 돌아보는 시선이 청자의 마음에 어떻게 닿는지가 감상의 핵심이다. 화려한 수식보다 곡이 건네는 문장과 소재를 먼저 살피게 하는 발표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시즈 더 데이’가 제안하는 즐거움은 멀리 있는 성취만을 기다리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축하할 사람이 있고, 함께 생활하는 관계가 있으며, 문득 돌아보게 되는 선택이 있다는 사실이 노래의 재료가 된다. 앨범은 그 가운데 밝은 장면만 골라내지 않고 아쉬운 마음도 함께 놓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작은 지금을 즐기자는 말을 감정의 정리가 아니라 감정의 수용으로 넓힌다고 해석된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가사의 세밀한 감상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생일과 부부의 일상, 후회와 응원이라는 소재는 자신의 삶을 떠올릴 통로가 된다. 세계의 음악 팬에게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 싱어송라이터가 발견한 평범한 하루의 소재에서 각자의 오늘과 닮은 감정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