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이 올해 6월부터 3개월간 실시한 고다산성 첫 발굴조사에서 ‘왕(王)’명 청동인장 등 유물 100여점이 나왔다.
주요 출토품은 ‘새금관(塞琴官)’명 기와와 중국 당나라 형식의 금동허리띠 등이다. 지방 관아의 수준을 뛰어넘는 최고위층의 위세품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고다산성이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지방 통치의 거점이었다는 점이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방어시설 넘어 통일신라 정치·행정 거점으로
급상승 검색어 ‘다산’과 관련해 주목할 발굴 성과는 해남 고다산성에서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지방의 정치·행정 기능을 수행한 치소성의 성격을 뒷받침하는 유물이 출토됐다. 성벽과 문 등 유구도 함께 확인돼 성곽의 구조와 활용 양상을 살필 자료가 확보됐다.
해남군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의 핵심 유적인 고다산성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현산면에 자리한 이 산성에서 처음 이뤄진 발굴조사다. 조사 기간은 올해 6월부터 3개월이며, 발굴 유물은 모두 100여점에 이른다.
관심이 쏠리는 대목은 출토품이 드러내는 산성의 위상이다. 청동인장과 금동허리띠 등은 최고위층의 위세품으로 평가된다. 이들 유물은 고다산성이 신라 중앙과 연계된 고위 지방관아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지방통치의 거점이었다는 해석에도 힘을 싣는 자료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이곳에 석축산성이 축조되고 치소성으로 운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군사적 방어 기능만으로 산성의 역할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발굴의 의미도 유물의 수량뿐 아니라 지방 정치·행정의 거점이라는 성격에 놓인다.
‘새금관’ 기와와 ‘왕’명 인장이 남긴 단서
‘새금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문헌에 기록된 백제 행정지명과 관련된 자료다. 고다산성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출토품으로 평가된다. 산성이 위치한 지역의 행정적 배경을 살피는 과정에서도 주목되는 유물이다.
‘왕’명이 새겨진 청동인장은 행정문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장의 출토는 고다산성에서 이뤄진 행정 활동을 이해하는 단서다. 다만 행정문서에 쓰였다는 설명은 용도에 관한 추정이다. 글자가 확인됐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한 해석은 구분된다.
중국 당나라 형식의 금동허리띠는 통일신라시대 신분제와 지방 지배체계를 이해하는 자료다. 청동인장과 함께 출토된 이 위세품은 고다산성의 높은 위상을 뒷받침한다. 신라 중앙과 지방의 연계를 살피는 데도 의미가 있는 유물로 꼽힌다.
주요 출토품 외에도 막새를 비롯한 기와류가 나왔다. 무기류와 농경구, 의례용기 등도 함께 발굴됐다. 조사에서 확보한 자료는 건축과 무기, 농경, 의례에 걸쳐 다양하다. 이러한 출토품은 성벽·문 유구와 함께 고다산성의 성격을 파악할 바탕이 된다.
바닷길과 육상 접근로를 조망한 산성
고다산성은 서남해안의 해상 교통로와 육상 접근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석축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됐으며, 산 정상부를 성벽으로 둘러싼 태뫼식 구조다. 해상과 육상 교통로를 함께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자리했다.
현산면은 백제시대 새금현, 통일신라시대 침명현, 고려시대 해남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된다. 지역의 행정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제시된 장소라는 뜻이다. 이번에 나온 ‘새금관’명 기와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주목받는 자료다.
성벽에서는 외부와 내부의 축조 방식이 다르게 확인됐다. 군은 북쪽 성벽 외부를 들여쌓기 방식으로 축조했다고 설명했다. 내부는 판축으로 기초를 다진 뒤 수직쌓기를 한 구조다. 이러한 방식은 통일신라시대 성곽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성벽 조사 성과는 유물이 제시한 산성의 성격과 별도로 축조 기술을 살필 자료다. 밖으로 드러난 성벽뿐 아니라 내부 기초를 다진 방식까지 확인했다. 고다산성을 어떻게 쌓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구조적 단서가 확보된 것이다.
마한시대 흔적부터 고려·조선시대 보수까지
고다산성에서는 장기간의 활용 양상을 드러내는 문화층 3개도 확인됐다. 성벽 하층에서는 마한시대 유구와 유물이 나왔다. 통일신라시대 석축산성 아래에서 그보다 앞선 시기의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동쪽 문은 통일신라시대에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고려∼조선시대에는 계단식으로 보수했다. 문 유구에는 처음 설치한 시기와 후대에 고쳐 쓴 흔적이 함께 남았다. 이는 성곽이 조성된 뒤에도 활용과 변화가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성벽 하층의 마한시대 흔적과 통일신라시대 성곽, 후대의 문 보수는 시기별 이용 양상을 전한다. 이번 조사는 주요 위세품의 출토와 함께 산성의 축조·변형 과정을 확인했다. 고다산성의 정치·행정적 성격뿐 아니라 여러 시대에 걸친 활용을 살필 근거도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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