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출발점을 만든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 수출 역사를 돌아보다
1992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해외 수출을 시작으로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진출 기반을 만든 박재복 전 MBC 사회공헌실 국장이 2026년 8월 7일 오전 2시37분께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66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 전 국장은 한국 드라마가 해외 시청자와 만나는 초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K-드라마의 흐름은 단순히 최근 몇 년 사이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향한 콘텐츠 수출 시도가 축적되며 형성된 결과다. 박 전 국장은 ‘한류’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한국 드라마의 해외 판로를 개척한 인물로 소개됐다.
그가 해외 사업에 뛰어들었던 시기는 한국 방송 콘텐츠의 국제 유통 체계가 지금처럼 구축되기 전이었다. 당시 한국 드라마는 국내 시장 중심으로 제작·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박 전 국장은 작품 자체가 가진 이야기와 문화적 매력을 해외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는 이후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분석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시작된 한국 드라마 수출의 첫 장면
박 전 국장은 1992년 MBC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같은 해 홍콩에 ‘사랑이 뭐길래’, 튀르키예에 ‘여명의 눈동자’를 수출했다. 특히 ‘사랑이 뭐길래’는 이후 중국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록됐다.
그는 1993년에도 ‘여자의 방’, ‘질투’, ‘아들과 딸’을 수출했고, 1994년에는 ‘마지막 승부’, ‘폭풍의 계절’ 등 여러 작품의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해외 방송사와 직접 접점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현지 시장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콘텐츠 판매가 이어졌다.
1994년 중국 쓰촨 TV페스티벌에 만다린어로 제작한 프로그램 안내서를 들고 참여해 ‘질투’와 ‘여명의 눈동자’를 판매한 일은 한국 드라마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남았다. 이후 중국 CCTV와 방영권 계약을 체결한 ‘사랑이 뭐길래’가 1997년 중국 전역에서 방영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중국 매체에서는 ‘한류’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된 K-드라마의 기반
박 전 국장의 활동은 특정 작품의 해외 판매를 넘어 한국 방송 콘텐츠가 국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사랑이 뭐길래’ 이후 한국 드라마는 다양한 국가와 접점을 넓혔고, 작품 수출은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이후에도 ‘별은 내 가슴에’의 중남미 진출을 성사시키고, ‘대장금’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과정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 드라마가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 해외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과정이었다.
박 전 국장은 2005년 K-공감 인터뷰에서 1992년 이후 직접 이뤄낸 드라마 수출액이 4천538만 달러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MBC 프로덕션은 이러한 방송 콘텐츠 수출 성과로 2000년 ‘무역의 날’ 1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았고, 박 전 국장은 2001년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특별상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글로벌 시대 K-드라마 산업이 이어가는 도전
현재 한국 드라마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지만, 그 출발점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 했던 초기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박 전 국장의 사례는 콘텐츠 경쟁력이 작품 제작 이후의 유통과 해외 연결 과정에서도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방송 콘텐츠 산업은 이제 단순한 프로그램 판매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시장과 연결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성공을 위해서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각 지역 시청자가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전략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초기 해외 수출 경험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을 넘어 중동, 중남미 등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도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 마련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 전 국장이 추진했던 드라마 수출 활동은 오늘날 K-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남게 됐다.
방송 관계자들은 박 전 국장의 업적을 한국 드라마 해외 진출의 초석을 놓은 활동으로 평가했다. 권호진 한국방송학회 대외협력이사는 그를 두고 “‘한류’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절에 한류의 토대를 만드신 분”이라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팬들에게 사랑받는 지금, 초기 해외 시장 개척자들의 노력은 현재의 글로벌 K-드라마 열풍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한 편의 드라마가 국경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연결을 만드는 과정은 오늘날에도 K-콘텐츠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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