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가치에 맞춘 특허심사로 전환
9일 지식재산처는 한국 기업이 개발한 혁신기술의 권리범위를 기술적 가치에 맞게 설정하기 위한 ‘적정 권리범위 제공을 위한 특허심사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방안은 특허 등록 건수를 늘리는 데 머물지 않고, 기업의 기술적 기여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해 출원인이 실제로 체감하는 심사 품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어느 범위까지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가 사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특허심사의 중심을 양적 성과에서 권리의 실질적 가치로 옮기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심사목표 전환, 소통형 협의심사 도입, 특허 친화적 심사환경 조성이라는 3대 전략이다. 세 전략은 서로 분리된 절차가 아니라 하나의 심사 체계를 구성한다. 먼저 심사의 목표를 기술적 기여에 걸맞은 권리범위 설정으로 바꾸고, 심사 과정에서는 출원인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마지막으로 기업이 심사 결과와 절차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조다. 혁신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특허 등록 여부만 판단하는 방식보다 기술의 본질과 사업적 활용 가능성을 함께 살피는 방향이 중요해졌다는 정책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등록 건수보다 중요한 ‘권리의 폭’
특허는 등록됐다는 사실만으로 동일한 경제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 권리범위가 기술의 핵심을 충분히 포괄하는지, 경쟁 기업의 유사 기술과 구별되는 지점이 명확한지, 개발 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실제 사업에서 보호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식재산처가 ‘적정 권리범위’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의 기술적 기여보다 지나치게 좁은 범위가 인정되면 등록 특허가 있어도 시장에서 기술을 방어하는 힘은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기술적 기여에 맞는 범위가 정교하게 설정되면 특허는 연구개발 성과를 사업 자산으로 연결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특히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한국 기업에는 특허의 질이 제품과 기술의 신뢰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국내 심사 단계에서 기술적 기여와 권리범위를 면밀하게 다루면 기업은 자신이 확보한 지식재산의 내용과 한계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해외 사업을 추진하거나 기술의 가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활용 가능한 기초가 된다. 이번 방안이 곧바로 기업의 해외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혁신기술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출발점을 다듬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된다.
심사관과 출원인의 소통을 제도화
소통형 협의심사는 심사관이 제출된 문서를 검토해 등록 여부만 결정하는 역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방향을 담고 있다. 출원인이 어떤 부분을 핵심 기술로 판단하는지 설명하고, 심사관은 그 기술적 기여를 토대로 적절한 권리범위를 검토하는 협력적 구조가 강조된다. 특허 문서의 표현과 실제 기술의 의미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사 과정에서의 충분한 설명은 결과의 예측 가능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심사 결과만 전달받는 것보다 판단 과정에서 기술의 특징을 명확히 설명할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재석 지식재산처 특허심사기획국장은 심사관이 단순히 특허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출원인과 소통하고, 기술적 기여에 맞는 적정 권리범위를 설계하는 협력자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품질 특허심사를 통해 한국 기업의 혁신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이 발언은 심사관의 역할을 행정적 판단자에 한정하지 않고 기술의 가치를 권리로 구체화하는 전문적 조력자로 확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같은 변화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소통 자체가 또 다른 형식적 절차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출원인이 기술의 핵심을 충분히 설명하고 심사관이 그 내용을 권리범위 판단에 충실히 반영할 때 협의심사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다. 기술적 기여에 상응하는 권리를 설계한다는 목표는 심사 속도나 등록 숫자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따라서 결과뿐 아니라 설명의 충실성, 과정의 투명성, 출원인이 느끼는 심사 품질을 함께 살피는 방식이 이번 정책의 실효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12월 만족도 조사, 기업 체감도를 묻는다
지식재산처는 등록된 특허의 권리범위가 기술 가치에 맞게 인정됐는지, 심사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과 소통이 이뤄졌는지를 출원인이 직접 평가할 수 있도록 오는 12월부터 ‘등록특허 만족도 조사’를 시행한다. 이는 행정기관이 내부 지표만으로 심사 품질을 판단하지 않고, 실제 제도를 이용한 기업과 출원인의 경험을 정책 평가에 반영하려는 시도다. 등록 여부라는 이분법적 결과에서 벗어나 권리범위의 적절성과 소통의 수준을 묻는다는 점에서 심사 품질을 바라보는 기준도 한층 구체화된다.
만족도 조사는 이번 방안의 3대 전략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출원인이 권리범위와 설명 과정에 대해 직접 의견을 제시하면, 지식재산처는 기업이 어느 지점에서 심사의 가치를 체감하고 어떤 부분에서 보완을 요구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만족도라는 주관적 평가와 기술적·법률적 판단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사의 의미는 모든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데 있기보다 심사 품질을 점검할 현장 자료를 축적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특허심사 방안은 한국 기업의 혁신을 등록 건수로만 보여주는 단계에서 벗어나, 기술적 기여를 얼마나 강하고 명확한 권리로 전환할 것인지에 정책의 무게를 둔 변화다. 심사목표 전환과 협의심사, 특허 친화적 환경, 출원인 만족도 조사가 유기적으로 운영된다면 기업은 연구개발 성과를 보다 설득력 있는 지식재산 자산으로 구축할 기반을 갖게 된다. 글로벌 독자에게도 이 움직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이 혁신기술의 개발뿐 아니라 그 가치를 세계시장에서 보호하고 인정받게 하는 제도적 경쟁력까지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