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의 헌법 개정 논의 본격화, 책임총리제 도입 쟁점으로

2025년 10월,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 만의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시한 ‘조기 대선·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안’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헌법 개정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책임총리제 도입, 권력구조 개편의 핵심

이번 개헌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책임총리제를 도입하여 국회와 행정부 간 권력 균형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임기 후반 레임덕 현상과 권력 집중 문제를 반복적으로 노출해왔다. 책임총리제는 국회가 총리를 임명하고 불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제도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이원집정부제’ 또는 ‘준대통령제’로 부르며, 프랑스식 정부 형태를 모델로 삼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일부에서는 순수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어, 권력구조 개편을 둘러싼 정치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38년간 방치된 기본권 조항, 현대화 필요성 대두

개헌 논의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기본권 조항의 현대화다. 1987년 개헌 이후 38년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헌법 기본권 조항은 디지털 시대, AI 혁명, 기후위기 등 급변하는 사회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주요 개정 논의 사항으로는 △정보인권 및 디지털 기본권 신설 △환경권 강화 및 기후위기 대응 명문화 △노동3권 확대 및 플랫폼 노동자 보호 △생명권 및 안전권 명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지방자치 조항 개정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 AI 윤리 등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리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탄소중립과 기후정의를 헌법적 가치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셈법, 개헌은 또다시 정쟁의 도구인가

그러나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정치권의 ‘정략적 이용’ 문제도 함께 불거지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이후, 개헌은 2018년 문재인 정부, 2022년 제20대 대선, 그리고 2025년 윤석열 파면에 이르기까지 총 4차례나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여야가 그때그때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며 개헌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해온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야당은 현재 정국 주도권을 쥐고 개헌을 밀어붙이려 하지만, 여당은 시기상조론과 정치적 의도 의심론으로 맞서고 있다.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 찬성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인지 국민들의 냉철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개헌 성공을 위한 조건, 초당적 합의와 국민 신뢰

전문가들은 개헌이 성공하려면 초당적 합의 기구 구성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 기간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국민들이 개헌의 필요성과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개방적인 논의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8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했다. 디지털 혁명, 글로벌화, 저출산·고령화, 기후위기 등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헌법 개정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적 과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진정성을 주시하고 있으며, 또다시 개헌이 정치적 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2025년 개헌 논의가 38년 만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실패로 기록될지는 앞으로 정치권의 행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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