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는 1년에 200편 정도의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20편 정도에 불과합니다.” ‘영웅본색’(1987) 각본가 겸 프로듀서 찬 힝카이(진경가)가 29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던진 이 한마디에 홍콩 영화 제작 규모의 위축이 그대로 드러났다. 발언은 ‘홍콩 필름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계기로 나왔다.
방송사가 인재를 길러내던 시스템이 약해졌다
찬 힝카이는 지난 28일 서울 에무 아트스페이스 좌담 프로그램에 ‘연지구’(1987)의 스탠리 콴(관금붕) 감독과 나란히 섰다. 침체된 영화계를 뚫을 돌파구로 두 사람이 함께 꼽은 것은 신인 감독 육성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홍콩의 멘토링 프로그램 ‘패싱 온 더 토치’(Passing on the Torch)를 소개한 쪽은 스탠리 콴 감독이었다. 베테랑 감독이 신인 감독을 돕는 방식으로 차세대 감독을 키운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찬 힝카이는 “감독은 오랜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직업”이라며 “한두 작품의 성공이나 실패만으로 잠재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약해졌다”며 “젊은 창작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플랫폼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세대를 넘어서는 것은 결국 캐릭터다
‘영웅본색’과 ‘연지구’ 같은 홍콩 고전영화가 지금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통하는 이유를 두 사람은 감정에서 찾았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져도 형제애와 유대감, 후회 같은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며 “진솔한 감정을 담은 고전 영화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찬 힝카이는 말했다.
스탠리 콴 감독의 답은 이랬다. “핵심은 결국 캐릭터”라며 “(영화 속 캐릭터들의) 사랑과 기다림, 망설임, 후회는 세대를 초월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저예산 제작이 업계 표준이 된 것 같다
“거액의 제작비와 유명 배우를 앞세운 제작 모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찬 힝카이의 진단이다. 그는 “저예산 제작이 업계 표준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탠리 콴 감독 역시 “업계 전반의 압박 속에서 젊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작품을 만들 기회를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같은 진단을 내놨다.
한국 영화계 역시 투자 위축과 대규모 제작 감소라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탠리 콴 감독은 이 점을 언급하며 “한국 영화계도 홍콩처럼 경험 많은 감독들의 자원을 활용해 신인 감독들을 위한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찬 힝카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영화는 1970년대 홍콩 영화 산업이 성장하던 과정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며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한국만의 문화적 표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
부산·홍콩·도쿄 국제영화제가 함께 설립한 비영리단체 ‘아시아 영화상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홍콩 필름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2021년부터 태국 방콕,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지를 돌며 열려 왔다. 서울 에무 아트스페이스에서는 지난 26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