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도시의 영화가 부산에서 만난다
28일 제10회 부산인터시티영화제가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와 무사이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행사는 이날부터 사흘간 이어지며, 12개국 16개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를 포함한 국내외 21개 도시와 영화 플랫폼이 참여한다. 부산이라는 한 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의 영화가 연결되는 이번 영화제는 대규모 상업영화보다 각 도시의 시선과 기억을 담은 로컬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세계 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국가 단위의 영화제가 아니라, 도시와 도시가 직접 작품을 주고받는 교류의 장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뚜렷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독립영화협회가 주최·주관하고 부산시가 후원하는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필름 피플시티’다. 영화와 사람, 도시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은 이 문구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압축한다. 작품을 단순히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가 만들어진 지역의 생활과 문화적 배경까지 함께 바라보도록 설계된 행사로 읽힌다. 같은 장르의 작품이라도 어느 도시에서 제작됐는지에 따라 거리의 표정과 인물의 관계, 공동체가 기억하는 사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로컬영화의 매력이다.
이번 행사의 중심에는 부산이 교류해 온 국내외 도시와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가 있다. 참여 규모를 국가보다 도시 단위로 제시한 것도 중요하다. 12개국이라는 범위 안에 21개 도시와 영화 플랫폼이 모이면서 하나의 국가를 대표하는 영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의 목소리가 나란히 놓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산업의 중심부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창작자와 작품도 국제적인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접점을 넓히는 구조로 분석된다.
유럽·아시아·오세아니아를 잇는 로컬영화 지도
올해 참가 도시의 지리적 폭은 넓다.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 가운데 스페인의 바야돌리드와 테라사, 뉴질랜드의 웰링턴, 독일의 포츠담, 폴란드의 우츠, 일본의 야마가타, 베트남의 호찌민 등이 부산을 찾는다. 유럽과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도시가 한 프로그램 안에 배치되면서 관객은 서로 다른 제작 환경과 문화적 감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도시를 발견하고,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통해 영화를 다시 해석하는 양방향 관람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유네스코 네트워크에 포함된 도시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타이난과 일본 후쿠오카처럼 부산독립영화협회가 교류해 온 도시들도 작품을 출품한다. 제도적 네트워크와 현장 중심의 영화인 교류가 한 행사에서 만나는 구성이다. 공식적으로 연결된 도시뿐 아니라 협회가 관계를 이어온 지역까지 참여 범위를 넓힘으로써, 부산인터시티영화제는 단일한 국제기구의 틀에만 의존하지 않는 교류 모델을 보여준다.
특히 부산은 개최지에 머물지 않고 여러 도시의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결 지점으로 기능한다. 부산독립영화협회는 이번 영화제가 국내외 도시와 부산을 비롯한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의 지역 영화를 소개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핵심은 ‘지역 영화’라는 표현이다. 유명 배우나 거대한 제작비가 먼저 주목받는 방식과 달리, 작품이 태어난 장소와 그곳의 창작 생태계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구성은 영화의 다양성을 흥행 순위가 아닌 제작 기반과 지역성의 관점에서 살펴보게 한다.
‘드로잉시티’, 도시의 기억을 스크린에 옮기다
올해 특별섹션 ‘드로잉시티’에서는 전쟁 도시의 기억과 현실을 바라보는 두 편의 작품이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다. 구체적인 작품 정보가 공개된 자료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섹션의 주제만으로도 이번 영화제가 도시를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도시는 영화 속 인물이 움직이는 공간인 동시에 공동체의 경험이 축적된 장소다. ‘드로잉시티’라는 이름은 영화를 통해 한 도시의 기억과 현실을 다시 그려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작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는 점도 영화제의 발견 기능을 부각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을 반복 상영하기보다 한국 관객이 아직 접하지 못한 영화를 선보이며 관람 경험의 범위를 넓히기 때문이다. 전쟁 도시를 다룬 작품을 부산에서 함께 본다는 것은 각 지역의 기억이 국경을 넘어 전달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영화제가 특정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단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도시의 현실을 관객이 화면을 통해 마주하고 생각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와 무사이극장이라는 두 공간에서 사흘 동안 열리는 일정 역시 집중도 높은 관람을 가능하게 하는 구성으로 보인다. 21개 도시와 영화 플랫폼이 참여하는 만큼, 관객에게는 익숙한 영화 중심지 밖에서 어떤 이야기와 미학이 자라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가 된다. 영화제의 규모를 단순한 상영 편수나 스타의 참석 여부로 판단하기보다, 얼마나 다양한 지역의 창작물을 한자리에 연결했는지가 이번 행사의 핵심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이 보여주는 도시형 영화 교류의 가능성
제10회를 맞은 부산인터시티영화제의 정체성은 이름 그대로 ‘도시 사이’에 있다. 부산이 일방적으로 해외 작품을 초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교류해 온 도시와 영화 플랫폼이 각자의 지역 영화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최 도시와 참가 도시가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기보다 서로의 관객을 만나는 동등한 파트너가 된다. 한 작품의 상영이 끝난 뒤에도 도시 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행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영화제는 거대한 프랜차이즈와 흥행작이 극장가의 관심을 주도하는 시기에 로컬영화가 지닌 또 다른 힘을 보여준다. 12개국 16개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와 국내외 교류 도시가 함께한다는 사실은 지역 기반 창작이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오히려 각 도시의 고유성이 선명할수록 다른 문화권의 관객에게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다. 부산은 그 차이를 지우는 대신 한 스크린 위에서 비교하고 이해하도록 연결한다.
28일부터 사흘간 이어지는 제10회 부산인터시티영화제는 영화가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이 반드시 거대한 자본이나 유명 인물에서 시작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산과 바야돌리드, 테라사, 웰링턴, 포츠담, 우츠, 야마가타, 호찌민, 타이난, 후쿠오카 등 서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이 지역의 영화를 통해 한자리에 모였다. 글로벌 독자에게 이번 행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의 부산에서 시작된 도시 간 스크린 교류를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기억이 국경을 넘어 서로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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