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까르뜨 블랑슈’에 김지운·판빙빙·홍경표 초청

부산국제영화제 ‘까르뜨 블랑슈’에 김지운·판빙빙·홍경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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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창작자가 고른 세 편의 영화

28일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은 오는 10월 6일 개막하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까르뜨 블랑슈’에 김지운 감독, 중국 배우 판빙빙, 홍경표 촬영감독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영화 감독과 세계적인 배우, 영상미로 주목받아온 촬영감독이 각자의 영화적 출발점과 미학을 관객에게 직접 소개하는 자리다. 초청자들은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품 한 편씩을 선정해 관객과 함께 관람하고 대화를 나눈다.

선택된 영화는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블루’다. 거친 생존 액션과 여성 중심의 미스터리, 상실과 고독을 색채로 표현한 예술영화가 한 프로그램에 나란히 놓였다. 장르와 제작 시기, 창작 배경이 서로 다른 세 작품을 통해 영화인이 무엇을 보고 충격받았으며 그 경험을 자신의 창작 세계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다.

‘까르뜨 블랑슈’는 문화계 명사가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작품을 직접 고르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신설됐다. 일반적인 회고전이 한 창작자의 작품 세계를 완성된 결과물 중심으로 보여준다면, 이 프로그램은 그 창작자를 움직인 다른 영화로 시선을 돌린다. 관객은 초청자의 대표작만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편의 영화가 또 다른 감독과 배우, 촬영감독의 감각을 깨우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김지운이 기억한 ‘매드 맥스’의 원초적 에너지

‘장화, 홍련’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1979년 공개된 ‘매드 맥스’를 골랐다.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시리즈를 출발시킨 첫 작품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자극적이고 거칠며 본능적인 작품으로 바라봤다.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때 받은 에너지의 충격과 두려움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선택은 완성도에 대한 단순한 찬사를 넘어 창작자가 영화의 물리적인 힘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보여준다. 김 감독이 강조한 단어는 이야기의 복잡성이나 규모가 아니라 ‘거칠음’, ‘본능’, ‘에너지’, ‘두려움’이다. 화면과 움직임이 관객의 감각을 먼저 압도하는 영화의 성질에 주목한 셈이다. ‘매드 맥스’를 함께 본 뒤 이어질 대화에서도 작품의 줄거리보다 최초 관람 순간의 충격과 그 기억이 창작에 남긴 흔적이 중심에 놓일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미 여러 편의 작품을 만든 감독이 자신의 영화가 아닌 영향의 원천을 공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창작자의 취향은 대표작 목록만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두려움을 느꼈는지, 어떤 에너지를 오래 간직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감각이 형성되는 방식도 보다 선명해진다. 이번 선정은 영화 감상이 창작의 재료이면서 오랜 시간 지속되는 정서적 기억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판빙빙과 홍경표가 주목한 여성·색채·감정

판빙빙은 한국 감독 박찬욱의 ‘아가씨’를 선택했다. 그는 박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여성들을 위험하면서도 자유로운 존재로 해석했다. 또 그 여성들이 지닌 명료함과 담대함, 생명력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배우의 관점에서 인물의 감정과 행동, 이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태도를 함께 짚었다는 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선택과는 다른 감상의 축을 만든다.

판빙빙의 선택은 한국영화가 국경을 넘어 다른 문화권의 배우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도 보여준다. 그가 언급한 핵심은 특정 장면이나 기술이 아니라 카메라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과 인물이 발산하는 자유다. 배우가 한 작품 속 인물의 생명력에 매혹되고, 그 감정을 부산의 관객과 다시 나누는 과정 자체가 국제영화제의 교류 방식으로 평가된다. 한국 감독의 영화가 중국 배우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된다는 점도 글로벌 관객이 주목할 대목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1993년 작품 ‘세 가지 색: 블루’를 택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푸른빛 속에 담긴 상실과 고독이 새롭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이미지가 얼마나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다시 깨닫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촬영감독의 선택답게 색과 이미지가 감정을 운반하는 방식이 중심에 있다. 대사로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빛과 색채가 인물의 내면을 전할 수 있다는 영화 매체의 고유한 힘을 강조한 선택으로 읽힌다.

부산에서 펼쳐질 영화 취향의 국제 대화

세 사람의 목록을 함께 보면 ‘까르뜨 블랑슈’의 성격이 더욱 뚜렷해진다. 김지운 감독은 원초적인 운동감과 충격을, 판빙빙은 여성 인물의 자유와 생명력을, 홍경표 촬영감독은 푸른 이미지에 스며든 상실과 고독을 짚었다. 같은 영화인이라도 감독은 에너지, 배우는 인물, 촬영감독은 이미지와 감정의 관계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차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직업별 관점을 고정된 공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세 편의 조합은 영화 감상이 얼마나 다양한 입구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은 유명 인사가 추천한 영화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청자가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본 뒤 자신의 기억과 해석을 말한다는 형식은 감상을 공개적인 대화로 확장한다. 관객 역시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거나, 처음 접하는 영화를 창작자의 안내와 함께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신설된 프로그램이 제31회 영화제에서도 이어지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신작 소개뿐 아니라 영화적 영향과 취향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게 됐다.

세계의 K팝 팬들이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발견하듯, 글로벌 영화 팬들은 이번 부산의 선택을 통해 세 창작자의 내면에 자리한 ‘영화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호주 감독의 거친 액션, 한국 감독이 그린 자유로운 여성들, 폴란드 감독의 푸른 이미지가 부산에서 연결된다는 사실은 영화가 언어와 국적을 넘어 서로의 창작을 움직이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세계 관객에게 이번 한국 영화제 소식이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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