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랄 5세 별세…35년 재위 마감
유럽 최고령 군주인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노르웨이 왕실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하랄 5세 국왕이 오늘 서거했음을 알리게 돼 매우 슬프다”며 “국왕은 오늘 오전 6시35분, 오슬로 대학병원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용혈성 빈혈 치료 중 부작용으로 지난 17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아온 하랄 5세는 혈액 내 세균 감염으로 지난 주말을 기해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왕실은 그가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인 27일 상태가 극도로 위중하다고 설명했다.
하랄 5세가 별세함에 따라 하랄 5세와 소냐 왕비(88)의 아들인 호콘 왕세자(53)가 자동으로 노르웨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공식 칭호는 호콘 8세이며, 왕실의 지향을 상징하는 공식 구호는 선대부터 이어져 온 ‘모든 것을 노르웨이를 위해’를 계속 쓰기로 했다. 장례식이나 새 국왕 즉위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왕궁 앞 추모 행렬과 총리 애도
국왕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노르웨이 시민 수백 명은 전날 오후부터 오슬로 왕궁 앞에 꽃을 가져다 놓으며 국왕의 회복을 응원했다. 이날 아침 비보가 전해지자 수북이 쌓인 꽃과 노르웨이 국기로 채워진 왕궁 앞 광장에 모인 군중은 슬픔에 잠긴 채 하랄 5세의 영면을 기원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랄 5세는 노르웨이 국민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보여줬고,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서로에게서 가장 좋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애도를 표했다.
유럽 왕실·정치권 애도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명을 내고 “사랑하는 친척 하랄 5세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그는 35년간 한결같은 헌신으로 국민을 섬겼고, 따뜻함과 겸손함으로 노르웨이의 격변기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이어 “노르웨이가 이처럼 위대한 인물을 잃은 것을 애도하며 친절함과 연민, 깊은 책임감으로 사랑받은 친족이자 친구를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찰스 3세와 하랄 5세는 에드워드 7세 영국 국왕의 후손으로 6촌 관계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그는 국가 원수로서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스포츠 선수로서도 자국을 훌륭히 대표했다”고 했다. 프레데리크 10세 덴마크 국왕은 “하랄 5세는 35년 동안 노르웨이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든든한 구심점이었다”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위엄 있는 존재감과 인간미를 겸비한 그를 많은 이들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하랄 5세는 따뜻함과 겸손함, 흔들림 없는 책임감으로 평생 국민을 위해 봉사했다”고 했고,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군 경력을 지닌 하랄 5세는 노르웨이군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오랫동안 나토의 친구였다”고 애도했다. 프레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노르웨이는 신중함과 화합을 상징하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며 “왕실과 노르웨이 국민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고, 큰 힘이 깃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1991년 즉위, 요트 선수이자 평민과 결혼한 국왕
하랄 5세는 1991년 부친인 올라브 5세 서거 후 왕위에 올라 35년간 재위했다. 최근 크고 작은 건강 문제로 공식 활동을 줄이긴 했으나, 의회에서 ‘평생 서약’을 했다며 호콘 왕세자에게 양위하지 않은 채 왕위를 지켜왔다. 국왕으로서의 정치적인 권한은 없지만 왕실 현대화 노력과 전국을 돌며 시민들과 가깝게 소통하는 소탈한 면모, 통합적인 행보로 높은 국민적 인기를 누려 왔다.
2차대전 시절 나치의 노르웨이 점령기에는 어머니, 두 누나와 처음엔 스웨덴, 이후 미국에서 5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의 조부 호콘 7세는 나치 점령기에 독일의 요구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노르웨이 정부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했다. 요트 선수로도 활약해 여러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고, 1987년 요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1968년 8월에는 고교 시절 여자친구였던 사업가의 딸 소냐 하랄센과 결혼했다.
2016년 즉위 25주년 기념 연설에서는 “노르웨이인은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이고,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이며, 서로 사랑하는 여자와 남자다. 노르웨이인은 신, 알라, 우주를 믿기도 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기도 한다”고 말하며 성소수자와의 평등과 난민 포용, 종교적 관용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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