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IT 기기 가격 인상이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애플이 맥과 아이패드 가격을 최대 300달러 올리면서 흐름은 더 뚜렷해졌다.
애플은 맥북 100∼300달러, 아이패드 100∼200달러를 올렸다
인상 시점은 지난 6월 25일(현지시간)이다. 애플은 맥북 가격을 100∼300달러, 아이패드 가격을 100∼200달러 인상했다. 국내 공식 홈페이지 기준으로는 맥북 에어가 219만원, 맥북 프로가 329만원으로 각각 40만원과 60만원 올랐다. 지난 3월 99만원에 나와 ‘가성비’를 앞세웠던 보급형 맥북 네오도 119만원이 돼 100만원을 넘어섰다.
태블릿도 마찬가지다. 아이패드 에어와 아이패드 프로가 각각 124만9천원, 199만원으로 30만∼40만원씩 올랐고 애플TV와 비전 프로 등도 수십만원가량 조정됐다. 환율이나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부품 원가 상승을 반영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이어온 가격 동결 기조를 깼다
국내 제조사도 먼저 움직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출시한 갤럭시 S26 시리즈 가격을 전작보다 10만원 이상 올렸고, 울트라 512GB 모델은 출고가가 처음으로 200만원을 넘어섰다.
고용량 폴더블도 4월에 조정됐다. 갤럭시 Z 플립7 512GB는 164만3천400원에서 173만8천원으로, 갤럭시 Z 폴드7 512GB는 253만7천700원에서 263만2천300원으로 각각 9만4천600원 올랐다. 폴드7 1TB는 19만3천600원, 갤럭시 S25 엣지 512GB는 11만원 인상됐다. 수요가 많은 256GB 모델은 제외하고 원가 부담이 큰 고용량 위주로 손댄 것이다.
가격을 올린 곳은 스마트폰 업계만이 아니다. LG전자와 HP, 델, 레노버, 에이수스 등 주요 PC 제조사가 지난해 말부터 가격을 올렸거나 검토 중이고, 닌텐도는 스위치 OLED·일반·라이트 모델 가격을 일제히 올렸으며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도 플레이스테이션 가격을 상향했다.
이 흐름이 더 번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강민수 연구원의 진단은 이렇다. “다른 PC 및 태블릿 브랜드들도 애플 사례를 따라 가격 인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가격 인상과 함께 보급형 모델 출시를 줄이고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AI 서버용 메모리가 범용 D램·낸드 생산 여력을 밀어냈다
원인은 공급 쪽에 있다. 빅테크들이 AI 서버 구축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했고,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수익성 높은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서버용 D램 비중을 빠르게 늘렸다. 그만큼 스마트폰과 PC에 쓰이는 범용 D램·낸드플래시 생산 여력은 줄었다.
가격에는 이미 반영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분석으로 올해 1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 분기보다 90∼95%, 낸드플래시는 55∼60%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D램 50% 이상, 낸드플래시 90% 이상 상승으로 추산했고 2분기에도 D램 58∼63%, 낸드 70∼75% 추가 상승을 전망했다.
상승세는 3분기에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됐다. 트렌드포스는 3분기에도 D램 시장은 극심한 공급 부족이 이어지겠지만 전자제품 수요 약화와 기저 효과로 계약 가격 인상률이 전 분기 대비 13∼18% 수준으로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난드 가격 인상률도 10∼1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1년 사이 메모리값이 8∼9배 뛰면서 PC와 스마트폰 가격도 크게 올라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투자 확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는 흐름”이라며 “메모리 공급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스마트폰과 PC, 태블릿 등 주요 IT 기기의 가격 인상 압력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IDC는 올해 출하량 12.9% 감소, 평균판매가 523달러를 내다봤다
수요 쪽 전망도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작년보다 12.9% 줄어 “10여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이 될 것으로 봤다. 출하량 증가율은 2024년 6.2%에서 지난해 2.0%로 낮아진 상태였다.
충격의 성격을 짚은 사람은 IDC 글로벌 고객 부문 부사장 프란시스코 제로니모다. 그는 “현재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공급 부족이 아니라 메모리 공급망에서 비롯된 쓰나미 같은 충격으로, 파장이 소비자 가전 산업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부품 비용 상승이 마진을 압박할 것이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IDC 리서치 국장 나빌라 포팔은 “이번 메모리 위기는 일시적 감소를 넘어 전체 시장의 구조적 리셋을 의미한다”며 “올해 출하량은 대폭 감소하겠지만 평균판매가격(ASP)은 14% 상승해 사상 최고치인 523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메모리 가격이 내년 중반께 안정화되더라도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내년 출하량은 2% 회복하고 2028년에는 5.2%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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