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수량 증산안, 마지막 회기서도 상정되지 못해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9일부터 17일까지 9일간 제449회 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한진그룹 계열사 한국공항이 신청한 먹는샘물용 제주 지하수 취수량 변경 허가 동의안은 이번 회기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현재 월 3천t인 취수 허가량을 월 4천400t으로 늘리는 내용의 이 동의안은 제12대 제주도의회의 마지막 회기에서도 상정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됐다.
같은 회기에서는 한국공항의 지하수 개발·이용 허가 유효기간을 2년 연장하는 별도의 동의안이 함께 다뤄졌다. 오는 11월 24일 만료되는 기존 허가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안건과, 월 취수량 자체를 늘리는 안건은 서로 다른 사안으로 분리돼 심사됐다. 유효기간 연장안은 이번 회기 절차를 밟았지만, 증산 동의안은 심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여섯 번째 시도, 지난해 9월 보류 이후 재차 막혀
한국공항이 제주 지하수 취수량 증산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임시회에서도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는 같은 내용의 변경 허가 동의안 심사를 보류한 바 있다. 당시 위원회는 증산 허가 권한의 범위를 놓고 제주특별법 해석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공항이 애초 신청한 증산 규모는 월 4천500t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 제주도 통합물관리위원회 지하수관리분과위원회는 기내 서비스용 외 다른 사용처의 물량을 줄이는 조건을 달아 월 4천400t으로 조건부 가결한 바 있다. 회사가 신청한 원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행정 단계에서 이미 한 차례 물량 조정을 거친 뒤 도의회 심사로 넘어온 사안이었다.
한국공항 측은 증산이 필요한 이유로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이 한진그룹에 편입되면서 기내 음용수 수요가 늘었다는 점을 들어왔다. 항공사 통합에 따른 운영상 수요 증가가 지하수 취수량 확대 요청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공공 자원 관리 절차 속에서 거듭 제동
이번 상정 불발로 증산 동의안은 상임위원회 심사 보류에 이어 마지막 회기 상정 무산이라는 두 단계의 제동을 모두 거치게 됐다. 반면 유효기간 연장 동의안은 별도 절차를 밟아 이번 회기에서 처리됐다. 같은 사업, 같은 취수원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도의회가 두 안건을 구분해 다뤄온 셈이다.
제주 지하수는 지역 상수원이자 생활용수, 산업용수로 함께 쓰이는 자원으로, 취수량 확대 여부는 통합물관리위원회와 도의회 상임위원회 등 여러 단계의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이번 사안 역시 기업의 수요 증가 설명만으로 곧바로 취수량이 확대되지 않고, 사용처별 물량 조정과 법적 해석 검토 등 절차적 심사가 반복된 사례로 남게 됐다.
환경단체와 경제단체, 엇갈린 반응
상정 불발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11일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입장문을 내고 이를 환영했다. 이 단체는 제주 지하수가 특정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늘려줄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제주특별법이 규정하는 공수, 즉 도민 전체의 생명수라고 주장했다. 또 가뭄과 지하수위 저하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지하수 보전의 가치가 경제적 논리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점, 도민 합의가 부족한 논란 사안을 임기 말에 서둘러 처리하지 않은 점을 함께 짚었다.
반면 제주상공회의소와 제주경영자총협회, 대한건설협회 제주도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제주지회 등 지역 경제단체들은 지난 15일 입장을 내고 동의안이 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깝다는 뜻을 밝히며 전향적 검토를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따른 기내 수요 증가에 대응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한편, 하루 50t 규모의 추가 취수량이 골프장 한 곳의 하루 사용량에 비해 크지 않은 수준이라며 제주 경제 활력을 위해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절차
제12대 제주도의회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한 이번 증산 동의안은 자동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공항이 다음 대의회 구성 이후 동일한 내용의 동의안을 다시 제출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취수량 확대를 둘러싼 논의는 지하수 자원 관리와 기업의 수요 증가 요구가 맞서는 사안인 만큼, 자원 보전을 우선하는 환경단체와 경영 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경제단체의 입장차가 차기 도의회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