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원료 8톤 밀수출 사건이 드러낸 안전 공백
한국 사회에서 마약 확산과 원료 유출 문제가 핵심 치안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25년 9월 30일 합동 브리핑을 열고 미국 국제마약조직과 공모해 마약 원료물질인 GBL(감마부티로락톤) 8톤을 미국과 호주 등지로 밀수출한 30대 여성 A씨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GBL은 흔히 물뽕으로 불리는 향정신성의약품 GHB의 원료물질로,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1군 임시마약류 지정 물질을 대량으로 해외에 밀수출한 첫 사례로 파악됐다. 범행은 2024년 6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1년간 이어졌으며 적발된 물질의 시가는 159억원 상당으로 집계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관세청이 2023년 2월 도입한 전자상거래 간이통관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제도는 200만원 이하 전자상거래 물품에 대해 간이 통관절차만 적용해 별도의 마약 성분 검사를 거치지 않도록 한 것이 골자다. A씨는 GBL을 정상 공산품으로 위장하고 허위 성분분석표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검사망을 피해 대량 물량을 반복적으로 해외에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한국이 마약 소비국을 넘어 원료 유출국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구체적 수치와 함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마약청정국 지위, 언제부터 흔들렸나
한국은 유엔이 마약청정국의 기준으로 삼는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을 오랫동안 밑돌며 국제사회에서 마약청정국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이 기준은 2015년을 기점으로 무너졌다. 이후 마약사범은 꾸준히 늘어 2016년 인구 10만명당 25명 수준이던 것이 최근에는 35명 안팎까지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검찰청 집계 기준으로 2022년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전년 대비 13.9% 증가하며 당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마약류 사범 규모는 매년 2만명 안팎을 유지하며 높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5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2만3403명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밀수사범의 증가폭이다. 해외에서 마약을 국내로 들여오다 적발된 밀수사범은 1126명에서 1772명으로 57.4% 급증했다. 단순 투약자 단속을 넘어 국경을 넘나드는 유통 조직에 대한 단속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관세청 통계로 본 국경 단계 밀수 급증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총 1256건, 3318킬로그램으로 전년 대비 건수는 46퍼센트, 중량은 321퍼센트 늘어나며 두 지표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케타민과 LSD 등 이른바 클럽 마약으로 불리는 환각성 마약류 적발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점도 관세청은 별도로 지목했다. 인천공항 외에 지방공항을 통한 밀반입 시도도 늘어나는 추세로, 주요 공항의 단속이 강화되자 밀수 경로가 지방으로 분산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 밀수 사건도 잇따랐다. 2025년 4월 강원 강릉 옥계항에서는 대형 화물선의 엔진룸 저장고에 숨겨져 있던 코카인 약 2톤이 적발돼 중량 기준 역대 최대 마약 단속 사례로 기록됐다. 관세청은 당시 적발된 물량의 시가를 1조원 안팎으로 추산했다. 이처럼 국제 물류망을 이용한 대량 밀수가 잇따르면서 한국이 단순한 마약 소비국을 넘어 국제 마약 유통의 경유지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생활권으로 번지는 유통 경로와 청소년 노출
마약 유통 방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 등 익명성이 높은 메신저와 가상자산 결제,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불리는 비대면 거래 방식이 확산하면서 전통적인 대면 단속만으로는 유통망 전체를 추적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국제 특송화물과 소포를 통한 반입 시도도 계속되고 있어 통관 검사 체계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청소년의 마약 노출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관세청과 수사기관은 최근 청소년이 연루된 마약 밀수 적발 사례가 과거보다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한 접근성이 높아진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다만 이와 관련한 세부 통계는 관계 기관의 공식 발표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부 대응과 남은 과제
정부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적용되는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경 단계 검사 강화, 관계 기관 간 정보 공유 확대, 치료·재활 체계 보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GBL 밀수출 사건을 계기로 전자상거래 간이통관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200만원 이하 물품에 대한 간이 통관이 검사 사각지대로 악용된 만큼, 고위험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금액과 무관하게 성분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경 단계의 적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관, 경찰, 검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계하고, 적발 이후에는 투약자에 대한 치료와 재활 연계를 강화해야 재범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약류 사범 규모가 매년 2만명 안팎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처벌 위주의 대응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공감대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결국 이번 GBL 밀수출 사건과 관세청의 역대 최대 적발 통계는 한국이 마약청정국이라는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국경 단계 검사 강화와 온라인 유통망 추적, 청소년 예방 교육, 치료·재활 인프라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