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셰르 원전 재차 피격, IAEA “핵안전 마지노선 위협”
2026년 3월 24일 오후 9시 8분(현지시간)경 이란 남부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부지에 발사체 한 발이 떨어졌다. 이란 원자력청(AEOI)은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 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면서도,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는 없었으며 시설 전 구역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번 피격이 핵안전에서 넘어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선”에 근접한 사안이라며 관련 당사국들에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다.
이번 피격은 부셰르 원전을 겨냥한 두 번째 사례다. 앞서 지난 3월 17일에도 원전 반경 약 350미터 지점의 구조물이 발사체에 파괴됐으며, 당시에도 인명 피해나 원자로 자체의 손상은 보고되지 않았다. 두 차례 사건 모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군사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생했다. 앞서 지난 3월 2일 그로시 사무총장은 그 이전 시점까지의 공습에 대해 핵시설이 직접 타격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힌 바 있어, 이번 두 차례 부셰르 피격은 상황이 한 단계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왜 지금 IAEA가 국제 외교의 중심에 섰나
IAEA는 평시에는 사찰과 검증, 원전 안전 기준, 기술 협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지만, 이번처럼 군사 충돌이 핵시설 주변으로 번질 때는 국제사회가 가장 먼저 의존하는 핵안전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부셰르 원전이 훼손될 경우 이란 국내는 물론 인접국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방사능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은 부셰르 1호기 건설에 참여한 당사자로서, 지난 3월 25일 현지에 남아 있던 자국 인력 163명을 철수시켰다. 다만 약 300명의 인력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시설 관련 위기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군사 당사국은 자국의 의도와 피해 상황을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상대국은 이를 과장하거나 축소할 유인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의존할 수 있는 기준점은 IAEA의 현장 점검과 감시 체계, 기술적 평가다. IAEA가 강한 집행권을 가진 안보기관은 아니지만, 위험을 기술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주요국이 외교적 레드라인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서 그 역할의 무게가 커지고 있다.
국제법과 비확산 체제에 던지는 충격
핵시설을 겨냥한 공격이든, 그 인근에 대한 반복적 발사체 낙하든 국제법과 비확산 체제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하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과도한 부수적 피해를 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으며, 핵시설은 사고 발생 시 피해 범위와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커질 수 있어 훨씬 더 민감한 보호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부셰르 원전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사체가 떨어진 사실은 이 원칙이 실제 분쟁 상황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다.
비확산 체제 측면에서도 파장은 깊다. 각국이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전제 중 하나는 국제 감시와 안전 조치가 작동한다는 신뢰다. 그러나 분쟁 상황에서 핵시설이 군사적 표적 논리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안보적 의심을 구분해온 국제 질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중동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운영하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 에너지 시장이 이 문제를 예민하게 보는 이유
핵시설 안전 이슈는 안보·외교 분야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에너지 시장 심리와도 직결된다. 원전이 직접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핵시설 주변의 군사적 긴장 고조만으로 우라늄 농축, 핵연료 가공, 방사성 물질 운송, 원전 부품 조달과 관련한 보험료와 위험 프리미엄이 오를 수 있다. 로사톰이 부셰르 현장 인력 절반 이상을 철수시킨 조치는 이런 우려가 실제 운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국가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을 재평가하는 흐름 속에서, 핵시설이 분쟁 리스크에 직접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원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다시 복잡해질 수 있다. 원전이 기후 대응 수단으로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별개로, 지정학적 불안정성 속에서 원전 인프라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한국은 이 사안을 멀리 있는 외교 뉴스로만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원전 운영 경험이 많고 원전 수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핵연료와 관련 기자재, 안전 규제 체계를 국제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핵시설 안전 규범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해외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발전 효율과 건설 단가만이 아니라 분쟁 시 보호 체계, 비상대응 체계, 국제 감시 협력 능력이 함께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국내적으로도 이번 사안은 원전 안전과 비상대응 체계,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둘러싼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비확산 체제의 참여국이자 원전 운영·수출 경험을 함께 가진 국가로서, IAEA를 중심으로 한 핵안전 규범 강화 논의에서 목소리를 낼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향후 전망
부셰르 원전에 대한 두 차례 발사체 낙하와 그로시 사무총장의 경고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은 세 갈래로 모인다. 첫째는 주요국이 핵시설 문제를 명시적인 레드라인으로 관리하며 IAEA의 현장 검증 역할이 강화되는 경로다. 둘째는 경고와 우려 표명은 이어지지만 실질적인 보호 장치는 마련되지 않은 채 긴장이 장기화되는 경로다. 셋째는 실제로 원자로나 핵심 시설이 직접 타격을 입어 중대한 사고 위험이 현실화하는 경로로, 이 경우 사태는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 에너지 시장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그로시 사무총장이 반복적으로 자제를 촉구하고 있고, 로사톰이 인력 일부를 철수하면서도 완전 철수는 하지 않은 점에서 첫째와 둘째 경로 사이에서 상황이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두 차례에 걸친 부셰르 피격이 보여주듯 경고만으로 위험이 통제되는 것은 아니며, IAEA의 현장 접근 보장과 긴급 소통 채널 유지, 오인 공격 방지 체계 같은 구체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IAEA의 추가 현장 검증 발표, 유엔과 주요국이 핵시설 안전 문제를 별도 의제로 다루는지 여부, 국제 에너지 시장이 이를 구조적 리스크로 받아들이는지가 사태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전망이다.
